[사설]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 내 서울핀테크랩 개관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18.04.03. / 뉴시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3년 전 국회 정무위원 시절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이른바 '갑 질'했다는 보도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예산으로 미국, 유럽 등 해외시찰을 다녀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시찰에는 김 원장의 여비서도 동행했다고 한다. 김 원장을 수행했던 당시 KIEP 직원들은 출장보고서에서 '본 출장은 김 의원을 위한 의전 성격'이라고 썼다. 그는 정치인 이전에 참여연대를 창립한 첫 번째 시민단체 출신 금감원장이다. 이런 인물이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시찰을 다녀온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그의 취임사대로 국민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는 커 녕 금감원의 공신력에 상처를 줄 수 있다.

우리사회의 접대문화와 부정부패의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해 2년전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돼 접대문화가 점점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이 뿌리를 내리고 사회투명성과 청렴도를 높이려면 윗물부터 맑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김 원장의 '갑 질'행태를 보면 우리사회가 투명해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김 원장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예산 3천77만원으로 본인은 물론 여비서까지 대동해 미국, 유럽을 10일간 다녀온 것으로 보도됐다. 항공료, 숙박비 외에 일비 등 용돈까지 챙겨 받았다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김 원장이 외유 직전에는 KIEP의 예산삭감을 주장했고, 다녀와서는 아무 소리 없이 넘어갔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김 원장은 2014년 한국거래소 예산으로 보좌관을 대동해 우즈베키스탄도 다녀왔다.

금감원의 역할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금융기관의 업무 및 재산상황에 대해 검사하고 위반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제재를 가하는 기관이다. 금융권에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금감원에 피감기관에게 '갑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 임명된 것이 의외다. "피감기관 돈으로 해외출장을 간 분을 금감원의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야당의 공격이 틀리지 않는다.

김 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감독기관은 법령에 근거하면서도 그 특성상 재량범위가 넓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감독기구의 권위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여러 논란에 휘말리면서 금융감독원을 향한 국민들의 실망이 크다. 감독당국으로서 영이 서야할 금융시장에서 조차 권위가 바닥에 떨어져 이러한 상황에서는 금융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가 요원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금융개혁을 하려면 자신부터 개혁해야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유행어가 된 것은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남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 댄 정권의 실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행태는 가볍게 잊혀 지면서 대다수 공무원들은 10만원도 안되는 밥값과 선물 때문에 처벌을 받는다면 이를 수긍할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김 원장은 '갑 질'보도에 대해 적절히 해명하든가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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