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직지파빌리온 / 김용수
직지파빌리온 / 김용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은 고려 말인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발간됐다. '직지'의 존재는 동양에서도 변방(邊方)에 위치한 고려가 선진 미디어 국가이자 한국인의 우수한 문화적 DNA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하지만 직지는 현재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최근 충북도와 청주시가 직지의 국내전시를 위해 이종배(충주·자유한국당)의원을 통해 관련법 개정에 나서고 있다. 법 개정안 발의는 이번이 세 번째다. 그만큼 국회통과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왕 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직지의 국내 전시가 이뤄진다면 도민들이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물론 인쇄문화의 요람인 청주 흥덕사지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직지는 세계최고(最古) 금속활자본 답게 숫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에 직지를 눈여겨 본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다. 구한말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인 '빅토로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해 1907년 프랑스로 가져가 1911년 파리 두루오 고서 경매장에 내놓은 것을 고서(古書)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가 단돈 180프랑(지금 돈 65만원)에 낙찰 받았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195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이 도서관 동양문헌실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묻혀있던 직지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 공교롭게도 이곳에서 촉탁직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였다. 그는 1972년 직지에 인쇄된 글자 가장 자리의 금속흔적인 '쇠똥'을 증거로 직지가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임을 입증했다. 1455년에 나온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도 자그마치 78년이나 앞선 것이다.

하지만 직지를 한국으로 들여올 수 없었다. 직지는 약탈·도난 문화재가 아니라서 환수할 명분도 없을 뿐더러 국내 전시도 차단됐다. 프랑스 측이 국내 전시 이후 압류·몰수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경미 의원과 노웅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을 잇 따라 발의했지만 이번엔 일부 문화재 관련 단체들이 유물의 불법 반출에 면죄부를 줄 수 있고 직지에 대한 프랑스의 권리를 법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충북도와 청주시는 '공익 목적으로 직지가 국내에 일시 대여 형식으로 반입되는 경우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압류, 압수, 양도 및 유치 등을 금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간 '인쇄문화산업진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에 내놓을만한 문화유산이 남의 나라에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청주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기록문화유산의 도시다. 유네스코 국제기록 유산센터(ICDH; International Center for Documentary Heritage) 사무국도 들어설 예정이다. ICDH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면서 현재 기록 유산 분야 최초의 국제기구로 설립되는 것이다. 청주의 문화적인 위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직지의 국내 전시가 이뤄진다면 '금속활자의 발상지'인 청주는 선도적인 문화도시로 각광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인쇄문화산업진흥법' 개정은 더욱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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