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기 농촌 지키는 젊은 부부 '사과향에 흠뻑'

청년농부 윤보근·정은혜 부부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사과농장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청년농부 윤보근·정은혜 부부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사과농장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젊은이들이 농사를 지으면 청년농부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며 특별하게 생각하지만 그저 우리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뿐 입니다."

올해로 농사 6년차를 맞은 윤보근·정은혜 부부는 중학교 시절 남편이 아내를 짝사랑하며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성인이 돼 백년가약으로 결실을 맺은 이들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며 청년농부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다.

"아내와 저는 청주 미원면에 있는 미원중학교를 함께 나왔어요. 당시 아내는 같은 학년 친구들이 대부분이 호감을 가질 만큼 인기가 있었어요. 저도 그 중 한명이었는데 그때는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았죠."

남편은 각종 기념일이 되면 여느 남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내에게 선물공세를 했지만 자신에게 유독 차갑게 대했다고 말했다.

"생일날에는 미역국도 끓여주고 기념일에 선물도 주고 했는데 그러면 제 것만 빼고 받았어요. 어린 마음에 많이 서운했죠." 이에 아내는 "당시에는 보근이가 키도 작고 워낙 장난꾸러기라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 일로 핀잔을 듣곤 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랬나 봐요."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이후 청주시내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남편 보근씨는 한국농수산대학, 아내 은혜씨는 충청대학교 외식조리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가던 두 사람은 동창회에서 운명적인 재회를 한다.

"동창회를 가서 몇 년 만에 남편을 처음 봤는데 너무 멋진 남자가 돼 있었어요. 첫눈에 반했다고 해야 하나, 다른 여자 동창생들도 보근이에게 호감을 보이면서 마음이 급해졌어요."

이후 은혜씨는 보근씨에게 적극적으로 연락하며 자신의 감정을 전했다. 이후 이들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하게 되면 같이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윤씨부부는 농사에 대한 경험을 쌓기 위해 처가로 들어가 1년간 일을 도왔다.

"농촌에서 자랐지만 제가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니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장인어른 밑에서 일을 배웠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아버지께서 사과농장을 키워보라고 넘겨주셨어요."

자신의 농장을 갖게 된 윤씨부부는 부푼 꿈을 안고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농사꾼은 실패도 해보고 고생도 해봐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맨손으로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사과나무는 3년을 잘 가꿔야 고생한 만큼 결실을 맺을 수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게 없다보니 어린 마음에 너무 힘들었죠. 그렇게 힘들게 버티고 버티다보니 온전한 수확을 할 수 있었어요. 은혜랑 수확한 사과를 포장할 때 느낀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에요."

하지만 달콤한 행복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요동치는 날씨에 초보 농사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여름에 미원면 일대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어요. 어느 마을은 동네 전체가 물에 잠기기도 했죠. 전국 뉴스에 매일 나올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날을 회상하자 시종일관 밝은 모습을 보이던 부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사과를 팔아 모은 돈으로 농사 장비를 구입했어요. 그간 모은 재산을 다 털었다고 보면 되요. 그런데 그 창고가 물에 잠겨서 다 못쓰게 된 거에요. 우린 젊으니까 이겨낼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정말 막막했죠."

상상도 못한 물폭탄을 맞은 윤씨부부의 시련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해 겨울 이르게 찾아온 한파로 냉해 피해를 입는가 하면 다음해인 여름에는 영상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베테랑 농사꾼도 두 손 들게 한 악조건 속에서도 윤씨부부는 담담했다.

"2년간 혹독한 경험을 했어요. 이제 겪어보지 못한 자연재해는 태풍만 남았어요.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농장에 나갑니다."

이들이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청년농부로서의 꿈이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같은 곳에 있는 오렌지 농원을 보면 규모가 엄청납니다. 단지 과일을 생산하는 형태가 아닌 사람들이 우리의 농장을 찾아 산책도 하고, 체험도 하고, 힐링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농사를 지으며 느낀 자연과의 교감, 수확의 기쁨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형태의 문화가 확산되어야 농업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는 것이다.

윤씨부부는 청년농부에 대한 시선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털어놨다.

"지금은 청년농부라고 하면 뭔가 특별하고 신기한 사람들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리 부부도 첫사랑 청년부부로 유명세를 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이슈에만 초점을 맞추면 진실한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 진짜 청년농부들이 피해를 볼까 염려스러워요."

이어서 윤씨부부는 "방송에 우리의 이야기가 나가면서 사과를 찾는 분들이 많았는데 주문량을 채울 능력이 없어서 많이 팔지 못했어요. 만약 그때 내 능력 이상의 수익을 얻거나 했다면 지금처럼 우리부부가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청년농부라는 수식어가 이제 막 농사를 시작하는 청년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경계하는 윤씨부부는 청년언론 중부매일에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사실 모든 언론에 대한 부탁이기도 했다.

"농민들에게 '배추 값 폭락' 등 시기마다 의례적으로 쏟아지는 기사가 농민 생업을 위협하기도 한다"며 "물론 맞는 부분도 있겠지만 지역별로 시기별로 틀린 보도가 될 수도 있는데 이러한 보도가 너무 쉽게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부부는 "농촌의 경우 농민회가 있지만 업종별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결집된 단체가 없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가 중요하다."며 "지역별 정확한 보도가 선행 돼야 농민들이 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