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불안한 우리들의 이정표… 긴 터널 지나면 봄이 찾아 오겠죠"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취업,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사회, 그 중심에 청년이 있다. 이른 바 'N포세대'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지만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상황속에서 청년들은 젊음과 열정, 꿈을 내려놓고 그 대신 불안과 고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고용난 속에서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춘들, 늦춰진 취업과 결혼으로 지각인생을 살고 있는 청춘들을 만나봤다. 일, 결혼, 경제여건, 주거, 꿈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창간29주년을 맞아 본보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회사원, 창업인, 새내기 직장인, 취업준비생들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두환, 이현배, 박유순, 최리혜, 이지은 씨. / 김용수
 창간29주년을 맞아 본보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회사원, 창업인, 새내기 직장인, 취업준비생들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두환, 이현배, 박유순, 최리혜, 이지은 씨. / 김용수

◆청년이 생각하는 '청년'은

"청년은 '겨울'이다. 아직 미숙하고 완성되지 못해 차가운 바람이 불면 흔들리지만 언젠가 따스한 봄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박두환)

"청년은 '현실'이다. 가장 빛나고 아름다울 시기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이 제일 싫어요. 현실은 아프기만 하니까요. 아무리 힘들다고 얘기해도 사회는 받아주지 않아요. 응석이고 어리광으로 볼뿐이죠."(박유순)

최리혜씨
최리혜씨

"청년은 '길'이다. 인생의 길은 청년때 정해지고, 청년때부터 실천하게 되니까. 인생을 되돌아갈 수는 없으니 일단 가봐야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알게 될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서있는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라는 점!"(최리혜)

"청년이 '답'이다. 앞으로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 할 사람들이 청년이니까 우리 사회의 답이 청년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들이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용기와 기회를 줘야 합니다."(이현배)

"청년은 '등대'다. 꺼지지 않고 미래를 밝게 비춰주니까."(이지은)

◆흔들리면서 피는 꽃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한 준비과정은 까다로워졌다. 학점은 기본이고 어학, 자격증, 다양한 경험을 요구한다. 준비할 게 많은 청년구직자들은 구직활동기간이 길어지면서 한숨은 늘고 자신감은 작아졌다.

충북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이지은(24·여)씨는 금융권 취업을 준비중이다. 수출입은행, IBK은행 같은 특수은행이 목표다. 본격적으로 구직생활을 한 지는 반년 남짓, 취업의 벽이 높다는 걸 점점 실감하고 있다.

"저보다 더 열심히 하는 주변사람들도 계속 취업이 안되는 걸 보면 더 열심히해야겠구나 싶죠. 제일 힘든 건 (시험에서) 자꾸 떨어질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점이에요."(이지은)

지은씨는 국제무역사, 수입관리사, 외환전문역, 무역영어, 서비스매니저, 유통관리사, 워드프로세서 등의 자격증을 갖고 있고, 조만간 외환전문역 1종, AFPK(한국재무설계사), CFP(국제공인재무설계사)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취업을 위해 공기업 취업준비생들과 주2회 2시간씩 그룹스터디를 하고 있고, 매달 토익시험과 OPIc(공인인증 영어회하기시험)을 치뤄 스펙도 챙기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 원서 낸 곳은 다 떨어졌어요. IT지식을 겸비한 융복합 인재가 되고 싶어서 그쪽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고 코딩이나 디지털공부도 하고 싶어서 학원을 알아보고 있어요"(이지은)

◆취직후 이직… 끝나지 않은 구직생활

취직을 한 이들도 구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내게 더 맞는 직장,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이직을 하는 청년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청주시 오창산단의 화장품·생활용품 OEM생산업체인 '㈜원앤씨'에 다니는 최리혜(28·여)씨는 이번이 다섯번째 직장이다. 지난해 10월 입사해 3개월 수습기간을 거쳐 이번에 정규직이 됐다. 2공장의 부자재 구매파트를 맡고 있다.

"적성을 찾다보니 직장을 옮기게 됐는데 지금 회사가 가장 적성에 맞아서 여기서 완전히 자리잡으려고 해요. 복지가 잘 돼있고 여성에게 열려있는 회사라서 좋아요."(최리혜)

한국교통대 증평캠퍼스를 졸업한 그녀는 25살에 첫 직장을 잡았다. IT공학의 전공을 살려 IT회사에서 1년간 일했고, 이후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몇달, 건축사무소에서 3개월, 오창의 IT회사에서 1년, 그리고 지금의 ㈜원앤씨를 선택했다. 한때 월급 120만원을 받으면서 오전 7시반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하고 토요일 근무까지 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직할 때마다 운이 좋게도 바로바로 취업이 됐어요. 취업은 '타이밍' 같아요."(최리혜)

박두환(33)씨는 대기업 제약회사에서 5년간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몇달전 음성의 물류회사로 이직했다. 공무원시험도 준비했었다. 그는 청년들의 상황을 '흔들리는 깃발'에 비유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 휘날리고 흔들리지만 깃대 라는 중심을 잡고 버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같아요."(박두환)

이현배씨
이현배씨

이현배(37)씨는 13년간의 직장인생활을 접고 창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라마다호텔, 흙살림 등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소셜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을 창업해 지난해 11월 충북콘텐츠코리아랩에 입주했다. 그는 청주시 레디고 액터스 시민배우 1기, 청주대 평생교육원 1인 미디어과정, 충북대 산학연 일반인 창업과정 등을 거쳐 창업을 준비해왔다.

"나랑 더 맞는 일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것도 필요해요. 좌절하고 실패를 겪었을 때마다 "괜찮아, 그 까짓거. 다시 해보자" 하면서 스스로 되뇌었어요. 자신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요."(이현배)

◆'돈'보다는 '개인 삶' 중시

청년들은 대기업, 높은 연봉을 쫓기보다는 자기생활을 가질 수 있는 일자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원하고 있다.

대기업 제약회사를 다녔던 박두환씨는 연봉 4천만원을 포기하고 연봉 3천만원의 중소기업을 선택한 이유로 '일'보다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금 회사는 개인 삶이 있어서 좋다고 덧붙였다.

"막상 일에 지치고 개인생활이 없으니까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신입사원 초임이 연봉 3천650만원이었는데 통장에는 매달 50만~60만원밖에 없었어요. 영업사원으로서 힘들었던 건 출근시간(오전 7시반)은 있는데 퇴근시간은 없다는 점이었어요."(박두환)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주변에서 영업사원을 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고.

청주 소재 약품유통회사에서 구매업무를 맡고 있는 박유순(35)씨는 입사 2년차 늦깎이 직장인이다. 대학졸업후 공무원을 준비하다가 외삼촌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일을 도왔고, 3년간 창업을 준비하다가 접고 직장인이 됐다. 그는 26개월 된 아들을 둔 가장이기도 하다. 한때 한 대형마트에서 연봉 4천만원 넘게 받으며 일하기도 했지만 야근에 격무에 시달려 3개월만에 그만뒀다. '돈'다는 '여유 있는 삶', 즉 '워라밸'을 선택한 것이다.

박유순씨
박유순씨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으니까 생활의 '여유'가 있는 직장이 좋은 직장이더라고요. 결혼을 기점으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저녁 6시면 퇴근하니까 좋아요. 가정생활도 중요하거든요."(박유순)

◆내 집 없는 '민달팽이' 신세

'민달팽이 세대', '워킹푸어(Working Poor)'는 청년들의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신조어다. 껍데기집이 없이 살 곳을 구하기 어려워 떠돌아다니는 주거현실, 열심히 일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신빈곤층을 의미한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박유순씨는 신혼집을 구할 때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당시 대출받았던 8천만원을 아직 갚고 있는 중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주택청약을 받아 3년뒤에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맞벌이를 하는 유순씨는 자신의 연봉 3천만원에다 사회복지사인 아내의 연봉 2천400만원으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맞벌이라 넉넉하진 않지만 숨통은 트여요."(박유순)

박두환씨는 음성의 회사 숙소에서 지낸다. 투룸에서 동료와 둘이 산다. 이지은씨과 최리혜씨는 부모님 밑에서 살고 있고, 이현배씨는 부모님과 살다가 최근 독립해 작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낸다.

"엄마아빠랑 떨어져 살고 싶지 않아요."(이지은)

"청년들은 경제활동이 미약하니까 청년임대형 주택 등 주거공간을 지원해주면 좋겠어요."(이현배)

◆혼자가 편하다 Vs 결혼이 안정적

박두환씨
박두환씨

취업이 늦어지면서 결혼도, 자녀출산도 늦어지고 있다. 심지어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결혼과 자녀양육을 계기로 가족의 재발견을 통해 '어른'이 되어간다.

박유순씨는 4년전, 32살의 나이에 결혼했다. 스스로 "적당한 나이였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둘째를 계획하고 있다. 유순씨는 '결혼'을 통해 심적 안정을 얻었고, '부모'의 자리에 대해 다시 보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주위에 결혼이든 출산이든 한 살이라도 일찍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부모님에겐 부족한 아들이지만 저희 아이에게는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고 싶어요."(박유순)

최리혜씨는 2년뒤인 30살에 결혼할 계획을 세웠다.

"엄마가 스무살에 결혼하셔서 저희 3남매를 키우셨어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두 분이 알콩달콩 서로 존중하면서 사시는 모습을 닮고 싶어요. 아이는 두 명을 낳고 싶어요."(최리혜)

반면 박두환씨는 결혼생각이 없다.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행을 다니고, 혼자 하는 일이 편하고 익숙하다.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 못만난 것 같아요. 장남이라 부모님의 잔소리가 심했는데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한뒤로는 결혼에 대한 부담이 줄었어요."(박두환)

이현배씨 역시 결혼을 미뤄뒀다.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다.

◆작아진 꿈…소확행에 만족

창간29주년을 맞아 본보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회사원, 창업인, 새내기 직장인, 취업준비생들이 밝은 미래를 위해 도전하는 열정을 담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위쪽부터 박두환, 이현배, 박유순, 최리혜, 이지은 씨. / 김용수
창간29주년을 맞아 본보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회사원, 창업인, 새내기 직장인, 취업준비생들이 밝은 미래를 위해 도전하는 열정을 담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위쪽부터 박두환, 이현배, 박유순, 최리혜, 이지은 씨. / 김용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고도 했지만,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청년들의 꿈은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원대한 꿈보다는 소박한 꿈을 꾸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최리혜씨는 현 직장에서 구매팀 부장을 다는 것이 꿈이고, 이지은씨는 은행원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박유순씨의 꿈은 부모님처럼 사는 것, 이현배씨의 꿈은 오는 20일 자신이 처음 제작해 촬영하는 '충북수요맛식회' 콘텐츠의 성공이다.

"1~2년쯤 지나 충북도민 160만중 25만 정도를 팔로워로 만들고 충북지역 맛집을 장악해 광고수익이 월 3천만원이 되면 좋겠어요. 그게 지금 저의 꿈이에요."(이현배)

박두환씨는 꿈을 갖는 것 자체가 낯설다고 했다.

"꿈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이거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꿈을 포기하고 살게 된 것 같아요. 꿈은 허황되다고 생각해요."(박두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미래에서 흔들리면서 피는 꽃, 청춘. 고단한 '청춘(靑春)'의 터널을 지나 그들에게도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봄날이 찾아올 것이다.

 

참석자

△박두환=33세, 음성 중소기업 근무, 대기업 제약회사서 이직.

△박유순=35세, 청주 약품유통회사 근무, 창업 시도 경험.

△이현배=37세, 소셜콘텐츠 스타트업 창업, 13년 직장 경력.

△최리혜=28세, 오창 화장품회사 근무, 4번 이직 경험.

△이지은=24세, 충북대 4학년 재학, 은행 취업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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