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세] ① 일용직 노동자들의 무료 급식소 '미소식당'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우는 날이 있으면 웃는 날도 있고, 비바람 몰아치면 햇볕 쨍쨍한 날도 있을 겁니다. 중부매일 연중기획 '우리가 사는 희망 세상(우희세)'은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찬비에 젖고 때로는 태풍이 몰아쳐도 눅진하게 혹은 억세게 맞서며 활기차게 땀 흘려 살아내는 우리들의 희망 만들기! 그 삶의 현장을 2017년 한 해 동안 기록합니다. / 편집자

김두호 청주시일자리종합지원센터장(좌측에서 두번째), 김경희 미소식당 대표(좌측에서 세번째) 등 자원봉사자들이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나눠주며 미소를 짓고 있다. / 신동빈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며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땐 나처럼 노랠 불러봐.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새해 첫 월요일인 2일 새벽 5시 45분. 급식 시작 5분 전인데도 식당 안은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관우(65)씨의 휴대 라디오에선 클론의 노래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떡국 드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익숙한 듯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일용직 노동자들. 새해 첫날에도 어김없이 일감을 찾으러 나온 그들은 서로를 '노동식구'라고 부르며 덕담을 나눴다.

청주시 수동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미소식당'의 새벽 풍경은 훈훈했다. 수십명의 노동자들이 떡국 한 그릇과 고봉밥을 들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하루를 열었다.

김낙천(62)씨는 새벽 일찍 청주시일자리종합지원센터에 들렀다가 식당으로 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와 봤지만 오늘도 어쩐지 헛걸음을 할 것 같다.

"요즘은 일자리가 없어서 별루여. 올해는 일자리가 많아 졌으면 좋겠어. 부정부패 없는 사회가 되면 나아지려나."

30여 년간 벽돌과 모래, 자갈 나르는 일을 했다는 이성재(53)씨는 건강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이들에겐 몸이 곧 재산이기 때문이다.

"올해 소망은 여기 오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돈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나는 새벽에 밥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짧게는 2~3년, 길게는 20년 넘게 김두호 센터장은 노동자들의 이름을 유일하게 불러주는 사람이다.1998년 길 위에서 시작한 무료급식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들의 빈속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로 이기도 하다. / 신동빈

새벽 6시 15분, 밥을 먹고 일어난 노동자들이 출석 체크를 하는 김두호(51)청주시일자리종합지원센터장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넨다. 그렇게 쌓인 커피만 서너 잔. "안 먹으면 섭섭해 하세요. 밥 먹기 전에 커피 몇 잔은 기본입니다."

김씨, 이씨 등으로 불리는 노동자들의 이름을 유일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김두호 센터장이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20년이 넘은 인연이다. 1998년 길 위에서 시작한 무료급식은 2006년 자치단체 지원을 받으며 18년째 바통을 잇고 있다.

스마트폰 도입, 인터넷 발달로 구인구직 풍경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평균 60대 미소식당 '노동식구'들은 고용시장에서도 노동시장에서도 밀려나기 일쑤다. 왁자하게 떠들고 있지만 헛헛한 웃음에선 소외감이 묻어난다.

김두호 센터장은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 일용직 노동자가 무료급식소인 미소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의 신발에 묻은 흙먼지들이 삶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다.


"일을 하다 다쳐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요. 이 분들은 몸이 재산인데 4대 보험이나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똑같아요. 일당이 4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랐지만 물가를 생각하면 결코 많은 것도 아닙니다."

지난달 20일부터 시작된 동절기 공사중지 명령으로 일자리 환경은 더욱 각박해졌다. 신정이지만 겨울나기는 더욱 힘겹다.

4년부터 급식소를 맡아 운영하고 있는 미소식당 김경희(59) 대표는 "추운 겨울, 밥 굶는 분들이 없길 바란다"고 했다.

"얼굴만 보면 얼마나 드시는 지 딱 알아요. 4~5인분 고봉밥을 두 번이나 드시는 분들은 그 한 끼로 하루를 납니다. 입이 껄끄러워 반찬이나 밥을 드시지 못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 제일 신경 쓰는 것이 국입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고추장이다. 뜨거운 밥에 고추장을 푹 퍼서 비벼먹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고추장 한 뚝배기는 기본으로 나간다. 추운 날엔 언 속을 녹여주고, 술을 마셔 쓰린 속은 달래주면서 무료급식소 미소식당은 올해도 어김없이 일용직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있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