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룻배 오가며 주막있던 자리…대림산서 달천 한눈에
나룻배 오가며 주막있던 자리…대림산서 달천 한눈에
  • 이지효 기자
  • 승인 2018.10.17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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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123리포트] 17.충주 대림산과 단월역
대림산성에서 바라본 달래강.

# 골산포 강변도로 따라가기

칼바위와 팔봉마을을 지난 달래강은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며 싯계교로 내려간다. 싯계교는 대소원면 문주리 팔봉마을과 살미면 향산리 싯계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2002년 콘크리트 다리로 만들어졌다. 길이 280m, 폭 11.6m의 2차선 다리다. 이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이곳에는 나루가 있어 배로 두 마을을 연결했다. 지금도 다리 위쪽으로 민가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나루를 운영하던 사람이 살았다.

그런데 싯계라는 지명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싯계는 씻개에서 변형된 단어로 보는 게 맞다. 씻개는 한자로 씻을 세(洗)자 개포(浦)를 써 세포라고도 불린다. 달래강이 마을 앞에서 ㄱ자로 꺾이며 모래톱(개)을 형성하는데, 그 모래톱이 물에 씻겨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길가에는 싯계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싯계는 수주팔봉과 함께 충주시민들의 여름휴양지로 이름이 높다.

싯계에서 달래강은 노루목까지 비교적 똑바로 흘러 내려간다. 강 우측으로 길이 나 있는데, 이 곳 사람들은 이 길을 골산포 강변도로라 부른다. 골산포의 골은 귀골, 산은 두룽산, 포는 세포를 말한다. 상류에서 하류로 세포, 두룽산, 귀골마을이 분포하고 있다. 그런데 충주를 기점으로 생각하다 보니, 하류에서 상류로 마을 이름을 연결해 골산포가 된 것이다. 어감상으로도 골산포가 더 낫다.

세포 아래 두룽산 마을은 말 그대로 두룽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산쪽으로 하실마을이 있고, 마을에서 출발하면 두룽산에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다. 두룽산 마을 아래 귀골이 위치한다. 귀골은 길옆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귀골은 달래강에 접하고 있는 마을로, 향산3리의 중심마을이다. 귀골에는 음식점들이 여럿 있다. 그것은 달천의 물이 깨끗하고 바라보는 경치가 좋기 때문이다.

골산포 강변도로는 제대로 된 2차선도로는 아니지만, 시내버스가 하루 3회 운행된다. 강변도로 입구에는 2000년 충주시에서 세운 상수원 보호구역 표지석이 서 있다. 그리고 달래강 위로 노루목 다리가 놓여 있고, 노루목 다리 아래 설운천변에는 마장터 마을이 있다. 마장터라는 이름으로 보아 과거 단월역의 말을 이곳에서 관리했을 것 같다. 마장터 마을에는 옛날 향산초등학교가 있었으나 1993년 폐교되었다.

# 대림산에 오르면 달래강이 내 손 안에

마장터 마을 앞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설운천이 달천에 합류되는 노루목을 만나게 된다. 노루목은 대림산 자락이 하천 쪽으로 돌출해 있어 노루 같은 동물들이 물을 먹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노루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달천은 노루목에서 남쪽으로 흐르던 방향을 서쪽으로 튼다. 그러므로 노루목 주변으로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다.

노루목에서 500m쯤 하류로 내려가면 대림산성 서문 입구가 나온다. 대림산성은 고려시대 몽골군을 물리친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대림산성은 충주의 진산인 대림산(489m) 남쪽에 축조된 산성이다. 산의 능선을 따라 돌을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가 5㎞쯤 된다. 지표조사를 거쳐 1999년 12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방향으로 달래강이 흐르는 천혜의 요새다.

대림산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 달래강 상류를, 서쪽으로 달래강 하류를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다. 대림산 북쪽으로 충주 시내 너머 멀리 한강까지 조망할 수 있다. 대림산 정상에는 봉수(烽燧)가 있었다. 수안보의 주정산 봉수와 대소원의 마산봉수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옛 기록에 보면 봉수대가 원형의 석루(石壘) 2단으로 되어 있고, 높이가 30척으로 되어 있다. 현재도 가로×세로 15×20m 정도의 봉수터가 남아있다.

대림산 앞으로 난 길이 과거 3번 국도였으나 강 건너편으로 4차선 도로가 나면서, 이 도로는 한적한 옛길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도로를 따라 버드나무들이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 길은 향산리에 사는 사람들의 자동차 도로로, 충주에서 단월-팔봉-수회-수안보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대림산성 입구에서 800m쯤 내려가면 삼초대(三超臺)가 나온다.

# 삼초대 그리고 영곡사(靈鵠寺)로 기록된 정심사(靜深寺)

삼초대는 임경업(林慶業: 1594∼1646)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초라는 이름처럼 임경업장군이 젊은 시절 세 번에 뛰어올랐다는 전설이 있다. 크게 볼 때 바위와 절벽이 삼단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정심사라는 절이 있다. 보통 사람이 정심사에 오르려면 삼백 계단은 올라야 한다. 정심이라는 한자는 고요하고 깊다는 뜻이다. 높은 절에서 볼 때 달래강은 깊은데도 불구하고 아주 고요히 흐른다. 그래서 절 이름이 정심사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정심사의 옛이름은 영곡사다. 이 이름 역시 신령스런 고니라는 뜻이니, 이곳 달래강에 고니가 놀았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겨울이면 이곳 달래강에 고니가 와서 봄까지 놀다 떠난다. 영곡사는 강변 높은 곳에 있어 달천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주목' '불우'조에 "영곡사는 대림산(大林山)에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고 푸른 시냇물을 굽어보며 공중에 걸쳐서 누각을 지었다. 밑에서 바라보면 달아맨 것 같다"고 했다.

영곡사는 단월역에서 말을 바꿔 타고 만나는 첫 번째 절경이선지 시인묵객들이 많은 시를 남겼다. 그 중 고려시대 정지상(鄭知常)의 시가 달래강 천길 바위 위에 위치한 절의 위태로움을 멋지게 표현했다.

천 길이나 높은 바위에 천 년 넘은 옛 절이 있으니 千巖頭千古寺
앞에는 강물에 임하였고 뒤로는 산에 의지하였도다. 前臨江水後依山
집의 세모 지붕 높아 북두칠성에 부딪칠 것 같으며 上磨星斗屋三角
누각의 한 칸은 반쯤 허공에 솟아 있구나. 半出虛空樓一間


 

# 단월역(丹月驛)과 유주막

유주막다리.

정심사에서 다시 하류로 600m쯤 내려가면 유주막이 있다. 단월에서 강 건너 풍동으로 건너가던 나루로 이곳에 유주막 다리가 생기며 사라졌다. 유주막이라는 이름은 달래강을 따라 무성한 버드나무(柳)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현재 유주막 다리 아래 단월동 21-25번지 일대를 과거 주막이 있던 자리로 본다. 그것은 1980년대까지 이곳에 줄배가 운영되고 주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주막에서 하류로 200m를 내려가면 단월역 자리가 나온다. 단월역은 충주 남쪽 4㎞ 지점에 있다. 충주에서 싸리고개를 넘어 수안보 방면으로 가다 달천과 만나는 길목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달천을 따라 대림산 남쪽으로 가면 살미와 수안보에 이른다. 그러므로 단월은 교통의 요지일 뿐 아니라 군사적인 요충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단월역은 충주 남쪽 10리에 있다. 역 남쪽에 계월루(溪月樓)가 있다고 적혀 있다.

단월역 역시 정지상, 서거정 등이 시를 남겼다. 정지상이 쓴 "푸른 하늘 외로운 달 작은 누각 서쪽에 있네(碧空孤月小樓西)"라는 시구를 통해 계월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단월역은 강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배기에 있고, 강쪽으로는 충주시 상수도사업소가 있다. 상수도사업소는 상수원수를 달래강에서 취수해 이곳 단월정수장에서 정수한다. / 이상기 충북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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