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내암리 서식지, 폭우로 온통 휩쓸려 환경 교란 심각

세계가 주목하는 이끼도롱뇽이 발견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아 미호강 생태계의 자랑으로 여겨온 '청주 내암리 계곡(탑선골)'이 올여름 집중호우에 곳곳이 휩쓸려 생물서식 환경이 크게 교란됐다. 가뜩이나 지난 수년 동안 주변 산림이 벌목 등에 의해 집중 훼손되면서 이끼도롱뇽의 서식 환경이 급속도로 나빠져 실제 서식 여부가 불분명해 오던 터인지라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는 볼멘소리가 높다.

◆미호강 내 이끼도롱뇽 첫 발견지 '쑥대밭'

'세계적인 생명터 미호강 대탐사'를 진행 중인 중부매일 취재팀은 올해 장마가 끝난 뒤인 7월 27일에 이어 제6호 태풍 카눈이 소멸된 직후인 8월 11일과 14일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청주 내암리 계곡에 대한 탐사에 나섰다. 내암리 계곡에서 이끼도롱뇽이 처음 발견됐을 당시의 시기가 한 여름인 8월 1일이었기에 그 시기에 맞춰 집중 탐사를 시도했다.

최근의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하천 바닥이 송두리째 교란되고 차가 다니던 비포장길은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오솔길로 변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내암리 계곡(탑선골). 인근에 무심천 발원지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표지와 내암리 계곡에서 절종 위기에 놓인 이끼도롱뇽(오른쪽 원안)./김성식
최근의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하천 바닥이 송두리째 교란되고 차가 다니던 비포장길은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오솔길로 변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내암리 계곡(탑선골). 인근에 무심천 발원지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표지와 내암리 계곡에서 절종 위기에 놓인 이끼도롱뇽(오른쪽 원안)./김성식

그러나 취재팀이 확인한 것은 '전혀 딴 세상'으로 돌변한 흉측스러운 계곡의 몰골일 뿐 소중한 생명체 이끼도롱뇽은 단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암리 계곡은 말 그대로 물폭탄을 맞아 예전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상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특히 이끼도롱뇽이 처음 발견된 지점은 이끼도롱뇽의 주요 은신처인 돌무더기가 대부분 떠내려가고 하천 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어 가장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끼도롱뇽을 찾는다는 건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보다 더한 무리수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14일 현재 내암리 계곡은 차량은 물론 사람 통행마저 어려운 상태다. 중국굴피나무 같은 커다란 나무들이 길 위에 쓰러져 두 곳을 가로 막고 있는 데다 심각한 도로 유실이 세 군데나 겹쳐 있어 무심천 발원지는 사실상 고립 상태다.

◆무심천과 이끼도롱뇽의 첫 인연

청주 무심천 상류인 내암리 계곡에서 이끼도롱뇽이 처음 발견된 것은 2008년 8월 1일 청주지역 환경·생태 분야 활동가인 권기윤씨(생태교육연구소 '터' 회원)에 의해서다. 권씨는 당시 무심천 발원지와 가까운 내암리 계곡 중류부에서 이끼도롱뇽을 발견해 환경단체와 지역 언론에 알렸다.

2008년 8월 1일 권기윤씨(생태교육연구소 '터' 회원. 사진 제공자)가 무심천 상류인 청주 내암리 계곡에서 처음 발견했을 당시의 이끼도롱뇽 모습./김성식
2008년 8월 1일 권기윤씨(생태교육연구소 '터' 회원. 사진 제공자)가 무심천 상류인 청주 내암리 계곡에서 처음 발견했을 당시의 이끼도롱뇽 모습./김성식

소식이 전해지자 환경단체와 언론은 앞다퉈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향해 특단의 보호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끼도롱뇽에 대한 보호 대책은커녕 환경단체와 언론의 관심마저도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

오히려 지난 15년 동안 내암리 계곡 일원에서는 이끼도롱뇽의 서식 환경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규모 벌목 행위가 보란 듯이 이어져 왔고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피서객들이 몰려들어 취사 행위를 일삼았다. 그러던 중에 이번 여름 집중호우 및 태풍에 따른 서식지 참사가 '최후의 일격'처럼 크나큰 충격을 안겨 줘 이끼도롱뇽의 안녕을 염원하는 지역민들의 가슴을 마냥 쓸어내리게 한다.

◆남한에 사는 허파 없는 미주(美洲)도롱뇽

이끼도롱뇽은 한 마디로 '남한에 사는 허파 없는 미주도롱뇽(lungless salamander)'이다. 미주도롱뇽과이면서 아시아 대륙에서는 유일하게 남한에만 산다는 것과 아시아산 도롱뇽 모두가 허파 호흡을 하는데 유독 이 종만 허파가 아닌 피부로 호흡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미주도롱뇽과는 본래 북미와 중미 대륙, 유럽의 일부지역(이탈리아 북부)에만 서식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2001년 4월 대전국제학교 과학교사였던 스티픈 카슨(Stephen J. Karsen)이 금강 갑천 수계의 대전 장태산에서 학생들과 야외 관찰학습 중 처음으로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한·미 학자의 공동연구로 2005년 'Karsenia Koreana'란 학명으로 신종 발표됐다. 속명인 카르세니아(Karsenia)는 첫 발견자인 카슨(Karsen)에서 따왔고 종소명인 코레아나(Koreana)는 한국에만 사는 고유종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과학잡지 네이처에 소개되면서 전 세계 생물지리학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뒤 지금까지도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대륙이동설과 그에 따른 생물 이동 경로를 밝힐 수 있는 소중한 생물이란 점에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끼도롱뇽의 국내 첫 발견지' 대전 장태산에서 확인한 이끼도롱뇽의 어린 개체./김성식
'이끼도롱뇽의 국내 첫 발견지' 대전 장태산에서 확인한 이끼도롱뇽의 어린 개체./김성식

대전 장태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청주 무심천 상류(내암리 계곡)를 비롯한 20여 곳에서 이끼도롱뇽이 발견됐는데 많은 서식지가 금강 수계를 중심으로 분포돼 있는 점도 특이하다. 학자들은 국내에서 더 많은 서식지가 발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발견되는 서식지마다 규모가 작고 개체 수도 극히 빈약한 점을 들어 '긴급 보호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의 과제

국내 첫 발견 이후 학자들의 연구 노력으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끼도롱뇽의 상당 부분이 밝혀진 상태다. 대전의 한 교사 출신 전문가는 처음으로 알을 확인하기도 했다. 한국양서파충류학회 이사인 문광연씨는 관찰실험을 통해 '이끼도롱뇽은 지름이 약 5mm인 흰색 혹은 노란색의 알을 서식지 돌 밑에 붙여서 낳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끼도롱뇽은 여전히 번식 메커니즘을 비롯한 기본적인 생활사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채 '수수께끼의 동물'로 남아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촬영된 이끼도룡뇽의 알(문광연 한국양서파충류학회 이사 제공)./김성식
국내에서 유일하게 촬영된 이끼도룡뇽의 알(문광연 한국양서파충류학회 이사 제공)./김성식

무심천 상류의 이끼도롱뇽 서식지도 '지역의 과제 내지 미스터리'로 꼽힌다. 2008년 8월 첫 발견된 이후 불과 한 손에 꼽을 만큼 발견된 사례가 극히 적다. 일부에서는 이미 무심천 상류에서 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따라서 소중한 생물자원이 지역민도 모른 채 속절없이 종적을 감추기 전에 서둘러 실태 조사라도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광연 한국양서파충류학회 이사는 "이끼도롱뇽은 허파 없이 피부로 호흡하는 특이한 신체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조그만 환경변화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무심천 상류 서식지 주변에서는 벌목 작업과 피서철 취사 행위 등 서식 환경 파괴 행위가 끊이지 않았다"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여름 집중호우 및 태풍으로 인해 서식지 환경이 크게 교란돼 안타깝다. 가능한 조기에 원상복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당 지자체 등이 보다 적극 나서 줄 것"을 강조했다./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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