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부엉이·원앙·하늘다람쥐 매년 보금자리 마련 '생태계 버팀목'

 

268그루의 보호수 품은 미호강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2020년 기준으로 충북의 미호강 수계에는 268그루의 보호수가 자라고 있다. 지역별로는 청주시 112그루, 증평군 30그루, 괴산군(사리면, 청안면) 8그루, 진천군 54그루, 음성군 64그루이다. 충북의 보호수 1224그루의 22%에 해당한다. 적지 않은 숫자다. 충남 및 세종시 관내를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이들 보호수는 최소 100년 이상된 노거수들로 대부분 마을나무, 동나무, 시·군나무로 지정된 나무다. 종류는 느티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돌배나무, 모과나무, 왕솔나무, 상수리나무, 향나무, 시무나무, 말채나무, 느릅나무, 음나무, 개비자나무, 꾸지뽕나무, 왕버들 등 18종에 이른다.

이들은 오랜 세월 자라오는 동안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당산목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쉼터를 제공하는 정자목, 주변 경관을 더하는 풍치목 역할을 해오고 있다. 생물학적 가치는 물론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어 보호수로 지정됐다. 특히 자연과 인간 사회를 연결해 주는 고리 역할을 하기에 의미가 깊다.

 

수령 300년 된 '생명 탄생의 보루'

미호강 수계에는 해마다 여러 생명을 품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태계의 버팀목' 같은 노거수가 있다. 수령 300년 된 충북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의 느티나무가 주인공이다. 1982년 군나무로 지정된 나무높이 약 20m, 가슴높이 나무둘레 약 5m인 거목이다.

고려 전기의 유물로 추정되는 증평 미암리 석조관음보살입상(충북도유형문화재 198호)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지역 수호신으로서 지역민의 가슴 속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 정서적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이런 유서 깊은 나무가 품 안에 각종 생명을 보듬어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후투티, 멧비둘기, 물까치, 솔부엉이, 원앙 등 5종의 조류가 해마다 둥지 틀어 새끼를 번식한다. 또 희귀 포유류인 하늘다람쥐가 살고 토종꿀벌과 양봉꿀벌이 한 나무에 사는 특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이중 하늘다람쥐는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과 천연기념물로, 솔부엉이와 원앙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법정보호종이다. 생태적 기능으로 치면 이 나무를 따라올 나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중한 존재다.

 

깃들어 사는 생물만 8종

송산리 느티나무의 '대표 단골손님' 후투티 - 충북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의 느티나무에 둥지 튼 후투티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다. 이 느티나무에선 최근 후투티가 일 년에 3번까지 새끼를 번식한 사례가 있다. /김성식
송산리 느티나무의 '대표 단골손님' 후투티 - 충북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의 느티나무에 둥지 튼 후투티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다. 이 느티나무에선 최근 후투티가 일 년에 3번까지 새끼를 번식한 사례가 있다. /김성식

최근 들어 이 느티나무에서는 새들의 번식기가 다가오면 기이한 장면이 펼쳐진다. 여름철새인 후투티(학명 Upupa epops)가 5월이 되기 전에 벌써 새끼를 육추하는 이색 광경이 벌어진다.

다른 여름철새들이 이동하기 훨씬 전에 후투티는 이상하리만큼 이른 시기에 첫 번식에 들어간다. 여름철새인 후투티가 겨울철에도 이동하지 않고 국내에서 월동하는 사례가 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호강 수계에서도 최근 겨울철에 월동 중인 후투티들이 곧잘 눈에 띄곤 하는데 이 같은 텃새화 현상이 이들의 조기 번식을 가져오는 주요인이 아닌가 싶다.

실례로 올핸 이 느티나무에서 4월 말쯤 육추 활동이 시작됐다. 이 같은 후투티의 조기 번식은 연간 번식 횟수의 증가로 이어져 주목된다. 일찌감치 첫 육추에 들어간 올해는 이 느티나무에서 무려 세 번이나 번식이 이뤄져 놀라게 했다. 비교적 이르게 찾아와 번식에 들어가는 제비도 일 년에 세 번 번식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이 느티나무에서 후투티의 육추가 한창 진행될 무렵 찾아와 둥지 트는 두 번째 번식객이 멧비둘기(Streptopelia orientalis)다. 멧비둘기 역시 해마다 이 나무를 찾아 번식하는 단골손님이다. 텃새인 멧비둘기는 이 나무의 중하단부 가지에 둥지 틀고 일 년에 두 번 가량 새끼를 깐다.

그다음에 찾아와 번식하는 새가 물까치(Cyanopica cyanus)다. 텃새로서 보통 5월에 둥지를 틀어 6~9마리의 새끼를 깐다. 물까치 또한 멧비둘기처럼 이 느티나무의 중하단부에 둥지를 튼다.

증평 송산리 느티나무엔 지난 2021년부터 솔부엉이 한 쌍이 찾아와 번식한다. 사진은 나무구멍에 부화한 새끼 솔부엉이. /김성식
증평 송산리 느티나무엔 지난 2021년부터 솔부엉이 한 쌍이 찾아와 번식한다. 사진은 나무구멍에 부화한 새끼 솔부엉이. /김성식

지난 2021년 이후 해마다 물까치가 둥지 틀 때쯤 찾아오는 또 다른 단골손님이 솔부엉이(Ninox scutulata)다. 여름철새로서 이 느티나무를 찾아 번식하는 유일한 맹금류이자 천연기념물이다. 야행성이기에 해질 무렵부터 활동하기 시작해 동틀 무렵까지 활동한다. 한배에 보통 3~5개의 알을 낳는데 이 느티나무에선 첫해인 2021년부터 3년째 3마리씩 번식하고 있다.

솔부엉이가 맹금류라는 점에서 이 느티나무에 사는 설치류 하늘다람쥐(Pteromys volans)가 졸지에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신세가 됐다. 한 지붕 아래 두 천연기념물(하늘다람쥐는 멸종위기야생생물 중복지정)이 살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하늘다람쥐는 뒤에서 별도로 다룬다.

이 느티나무엔 또 천연기념물인 원앙(Aix galericulata)도 해마다 찾는 단골 번식객이다. 원앙은 대부분 이 느티나무 중간부의 구멍 안에 둥지 틀고 10마리 이상의 새끼를 번식한다.

지난해 증평 송산리 느티나무에 살던 재래꿀벌이 분봉 후 나뭇가지에 집을 지은 모습./김성식
지난해 증평 송산리 느티나무에 살던 재래꿀벌이 분봉 후 나뭇가지에 집을 지은 모습./김성식

이 느티나무엔 조류 외에도 곤충인 양봉꿀벌(Apis mellifera)과 재래꿀벌(Apis cerana)이 각기 다른 봉군을 이뤄 살고 있다. 양봉꿀벌은 이 나무의 상층부 나무구멍에 집을 짓고 해마다 번식한다. 재래꿀벌은 이 나무 하층부의 나무구멍에 집을 짓고 사는데 특히 지난해엔 분봉한 무리들이 이 느티나무의 나뭇가지에 커다란 집을 지어 관심을 끌었다.

 

 

기로에 선 '미호강의 귀염둥이' 하늘다람쥐

솔부엉이 날아들면서 쫓고 쫓기는 불안한 동거 시작
 

지난 2021년 이후 증평 송산리 느티나무를 찾아오고 있는 솔부엉이와 불안한 동거를 이어오고 있는 하늘다람쥐./김성식
지난 2021년 이후 증평 송산리 느티나무를 찾아오고 있는 솔부엉이와 불안한 동거를 이어오고 있는 하늘다람쥐./김성식

증평 송산리 느티나무엔 미호강의 귀염둥이이자 마스코트인 하늘다람쥐(Pteromys volans)가 살고 있다. 하늘다람쥐는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인 희귀동물이다. 이런 희귀동물이 언제부터 이 느티나무에 살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나 2021년도에 이 나무의 죽은 가지를 베어낼 당시 확인한 배설물의 양으로 보아 적어도 수년 전부터 살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2021년 5월 솔부엉이가 이 나무를 처음 찾아 번식에 들어가면서 하늘다람쥐는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두 종 모두 법정보호종이지만 야생에서는 강자와 약자, 천적과 먹잇감의 입장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후 걸핏하면 솔부엉이는 하늘다람쥐를 공격했고 그때마다 하늘다람쥐는 솔부엉이와의 목숨 건 숨바꼭질을 해야만 했다. 해질무렵이면 거의 매일같이 볼 수 있었던 하늘다람쥐가 이후부터는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 아니라 특히 솔부엉이의 육추 기간에는 더더욱 눈에 띄질 않았다.솔부엉이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2021년 첫해에는 무사히 지나쳤는데 2년 차인 지난해부터 두 종 사이가 급속히 악화해 불안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하늘다람쥐의 출현 횟수가 시간이 흐를수록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다가 우려하는 대로 하늘다람쥐가 솔부엉이에게 잡아먹히는 최악의 상황이 오지나 않을까 적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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