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지어 다니는 습성에 세계 집단 대부분 한국서 월동

미호강 수계의 백곡저수지와 초평저수지에는 약 4만2000 마리의 가창오리가 찾아와 겨울을 나고 있는 것으로 중부매일 취재팀이 처음으로 확인했다. 사진은 백곡저수지에서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는 가창오리 떼./김성식
미호강 수계의 백곡저수지와 초평저수지에는 약 4만2000 마리의 가창오리가 찾아와 겨울을 나고 있는 것으로 중부매일 취재팀이 처음으로 확인했다. 사진은 백곡저수지에서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는 가창오리 떼./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미호강이 또 하나의 빅뉴스를 안겼다. '세계적인 생명터 미호강 대탐사'에 나선 중부매일 취재팀에게 미호강이 선사한 세 번째 선물이다.

국제보호조류 재두루미와 노랑부리저어새에 이은 세 번째 주인공은 가창오리(Anas formosa)다. 내륙의 강인 미호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새 같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한반도 서남해 연안의 상공에서 경이로운 군무를 펼치는 모습을 세계 유수의 매체들이 소개해 더욱 유명해진 가창오리. 그들이 미호강 수계의 저수지 두 곳을 찾아 겨울을 나며 '조용한 군무'를 펼치고 있다. 대체 미호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약 2주 전으로 돌아가 본다.

 

수면 위의 검은 선 '가창오리 떼'

야행성인 가창오리는 낮엔 대부분 수면 위에서 휴식하는데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검은 선처럼 보인다./김성식
야행성인 가창오리는 낮엔 대부분 수면 위에서 휴식하는데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검은 선처럼 보인다./김성식

2월 16일 취재팀은 미호강 중류의 백곡저수지로 향했다. 산속 저수지의 겨울철새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현지에 도착한 취재팀은 저수지 수면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생각지 않은 광경이 신기루같이 펼쳐져 있었다.

수백 미터 앞 수면 위에 길게 늘어선 검은 물체. 금강 하구 등에서나 볼 수 있던 드문 광경. 하지만 이를 본 적 없는 이들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검은 선. 바로 가창오리 떼였다. "아니 왜 니가 거기서 나와"란 유행가 가사가 환청처럼 떠올랐다.

저수지 인근 주민들에게 물어봤다. 물 위 검은 선의 정체를 아는 이가 없었다. 그게 새였냐며 되묻는 이도 있었다. 그러니 가창오리들이 이곳에 언제쯤 왔는지는 더욱 알 리가 만무였다.

놀라움은 이튿날도 이어졌다. 백곡저수지와 이웃한 초평저수지에서도 가창오리 떼가 확인돼 연거푸 입을 벌려야 했다. 미호강 중류에서 마주한 뜻밖의 손님 가창오리는 이렇게 중부매일 취재팀을 통해 세상 밖 문을 두드렸다. 취재팀이 미호강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이자 세 번째 빅뉴스 거리다. 취재팀은 이후 관찰에 들어가 3일 현재 10여 일째 이어가고 있다.

 

두 곳 합쳐 4만2천 마리로 추정

가창오리는 무리 지어 날 때 햇빛의 반사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연출돼 더욱 장관을 이룬다. 이런 소중한 날갯짓이 현재 미호강 수계의 백곡저수지와 초평저수지에서 펼쳐지고 있다./김성식
가창오리는 무리 지어 날 때 햇빛의 반사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연출돼 더욱 장관을 이룬다. 이런 소중한 날갯짓이 현재 미호강 수계의 백곡저수지와 초평저수지에서 펼쳐지고 있다./김성식

큰 무리를 이뤄 집단생활하는 가창오리는 그 수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물 위에 앉아 있을 때의 추정치와 날아올랐을 때의 추정치가 크게 다르다. 이를 감안해 두 저수지를 찾은 가창오리의 숫자를 조심스럽게 추정해 봤다.

백곡지를 찾은 가창오리는 대략 3만 마리로 추정된다. 초평지의 가창오리는 그보다 적은 약 1만2천 마리로 생각된다. 한해에 우리나라를 찾는 전체 가창오리 숫자가 30만에서 60만 마리란 점에서 결코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월동 개체가 전 세계 집단의 대부분이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두 저수지 간의 직선거리는 약 10km다. 시베리아와 한반도를 오가는 철새로서는 지척지간이다. 아마도 하나였던 무리가 두 곳으로 나눠진 게 아닌가 싶다.

 

개체 수 증가 불구 여전히 불안한 존재

미호강 수계의 초평저수지에서 가창오리들이 수면 위를 낮게 날며 휴식터로 향하고 있다./김성식
미호강 수계의 초평저수지에서 가창오리들이 수면 위를 낮게 날며 휴식터로 향하고 있다./김성식

가창오리는 몸길이 40cm 정도인 소형 오리다.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 평원지대 등에서 번식하고 주요 월동지인 우리나라에는 10월부터 찾아와 이듬해 3월까지 월동한다. 외형적 특징으로는 수컷의 뺨에 태극 혹은 반달 모양의 무늬가 있다. 북한에서는 이 점을 들어 태극오리, 반달오리로 부르기도 한다.

1900년대 초까지는 월동지인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가장 흔한 오리였으나 무분별한 사냥과 서식지 파괴 등으로 개체 수가 급감했다고 전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이런 추세를 감안해 한때 취약종(VU)으로 분류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개체 수가 회복되자 최소관심(LC)으로 등급을 낮춰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위기 상황을 들어 1998년 멸종위기 야생생물(2급)로 지정했으나 개체수가 늘자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목록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야생동물 포획금지 대상에 포함시켜 밀렵 등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가창오리는 독특한 습성으로 인해 '태생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군집성이 유독 강해 큰 무리를 이뤄 활동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 습성이 큰 약점이 되고 있다.

게다가 전 세계 집단의 대부분이 우리나라를 찾아 월동한다. 전체의 95%가 찾아온다는 보고도 있었다. 숙명적으로 전염병 같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신세다.

20여년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2천년 10월 국내 겨울철새의 최대 도래지 중 하나인 서산 천수만에서 1만3천여 마리의 철새가 가금 콜레라에 감염돼 폐사했는데 그중 90%가 가창오리였다. 떼지어 몰려다니는 습성으로 인한 재앙이었다.

가창오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같은 치명적 약점을 지닌 채 종을 유지하고 있는 생명의 신비로움 혹은 경외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새가 미호강 중류의 저수지 두 곳을 찾아 '조용히' 겨울을 나고 있다. 언론계 첫 보도인 중부매일 보도가 이들 가창오리의 조용한 겨울나기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기만 하다. 가창오리들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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