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황새 기억하는 주민 증언 통해 '황새의 강' 재확인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미호강 상류는 우리나라 텃황새(텃새로서의 황새)가 살던 황새의 고향이다. 일제강점기에 3건의 황새 번식지 및 도래군서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곳이다.

미호강 상류에서 바라본 진천군 이월면 관내 진천평야와 중산리(화살표). 예전엔 중산리에 둥지를 틀고 살았던 황새 외에도 겨울이면 진천평야에 두루미가 날아와 겨울을 났다고 전해진다./김성식
미호강 상류에서 바라본 진천군 이월면 관내 진천평야와 중산리(화살표). 예전엔 중산리에 둥지를 틀고 살았던 황새 외에도 겨울이면 진천평야에 두루미가 날아와 겨울을 났다고 전해진다./김성식

한반도의 마지막 텃황새가 살았던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텃황새는 절종됐지만 주민 가슴 속에 어떤 새로 기억되고 있는지, 텃황새가 보금자리를 틀었던 둥지나무와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의 비석은 남아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옛 황새마을을 찾았다.

◆'황새나무'가 건재한 음성 황새마을

먼저 충북 음성군 대소면 삼호1리. 미호강 발원지인 음성군 삼성면 마이산과는 직선거리로 약 1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농촌마을이다. 미호강 상류를 중심으로 음성군과 진천군에 걸쳐 펼쳐진 미호평야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삼호1리에 남아 있는 천연기념물 제120호 음성 학번식지 지정비. 맨 왼쪽은 왼쪽 지정비 뒷면에 있는 조선총독부라는 음각자./김성식
충북 음성군 대소면 삼호1리에 남아 있는 천연기념물 제120호 음성 학번식지 지정비. 맨 왼쪽은 왼쪽 지정비 뒷면에 있는 조선총독부라는 음각자./김성식

마을회관을 찾으면 주민을 만나겠지 했는데 모내기 철이어서 그런지 주민은 안 보이고 범상치 않은 비석 2기가 객을 맞았다. '천연기념물 제120호 음성학번식지(陰城鶴繁殖地)'라고 음각돼 있다. 왼쪽 비석 뒷면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라고 씌어 있다.

학(鶴)은 두루미를 일컫는 말이나 당시엔 두루미와 황새를 구분하지 않고 학으로 표현했단다. 해서 이 마을에 살던 새는 두루미가 아니라 텃새였던 황새로 봐야 한다는 게 통설이다. 두루미는 예나 지금이나 겨울에만 찾아오는 겨울철새여서 우리 땅에서는 번식하지 않는다.

조선총독부는 1933년 관련법을 공포하고 이듬해부터 해방 전까지 약 150건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12월 천연기념물을 재정비하면서 '가치 상실'을 이유로 이곳을 지정과 동시에 지정 해제했다.

그런데 이 마을 안내표지판에는 눈길을 잡아끄는 내용이 있다. 이 마을엔 일제강점기 이후 사라졌던 황새가 다시 찾아와 살게 되자 정부가 1968년에 천연기념물 199호로 다시 지정했으나 추후 사라지자 지정 해제했다고 적혀 있다. 확인해 보니 1968년에 황새를 천연기념물 199호로 지정한 것은 대상이 '황새'라는 종 자체이지 번식지를 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마을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황새가 살았던 것으로 주민들은 기억한다.

일제강점기 천연기념물 제120호 음성 학번식지가 있었던 음성군 대소면 삼호1리의 일명 황새나무(왼쪽)와 천연기념물 134호가 있었던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 고가의 황새 둥지나무 터(주민 이금례씨가 가리키는 곳).  미호강 상류인 음성군과 진천군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황새와 관련한 3건의 천연기념물을 지정할 정도로 예부터 텃황새(텃새 황새)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던 곳이다./김성식
일제강점기 천연기념물 제120호 음성 학번식지가 있었던 음성군 대소면 삼호1리의 일명 황새나무(왼쪽)와 천연기념물 134호가 있었던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 고가의 황새 둥지나무 터(주민 이금례씨가 가리키는 곳). 미호강 상류인 음성군과 진천군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황새와 관련한 3건의 천연기념물을 지정할 정도로 예부터 텃황새(텃새 황새)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던 곳이다./김성식

천연기념물 120호의 주소지는 삼호리 638번지다. 이 주소지와 가장 가까운 고 강성진씨 댁 울타리 안에는 지금도 수령 400년 이상 된 물푸레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이 황새나무로 부르는 나무다. 마을회관 앞의 비석은 이 나무 근처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젊었을 적 황새를 봤다는 주민 허송구씨(80)의 말을 들어봤다. 허씨는 1960년대 말까지 이 황새나무에는 한 쌍의 황새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쳤다고 기억했다. 사라지기 직전 마을 앞 미루나무로 둥지를 옮겼다가 다시 황새나무로 돌아온 뒤 뜬금없이 사라졌다고도 했다. 허씨는 특히 이 마을에 살던 황새가 자취를 감춘 뒤 얼마 안 가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서 수컷 황새가 밀렵꾼 총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당시 언론보도 등을 종합해 볼 때 허씨의 증언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서 수컷 황새가 밀렵꾼 총에 죽은 해가 1971년 봄이니, 1960년대 말까지 대소면 삼호리에 살다가 사라진 황새들이 그쪽으로 이동해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대소면 삼호리와 생극면 관성리는 직선거리로 약 12km 떨어진 곳이다. 이 사건 이후 함께 살던 암컷(언론에 과부황새로 소개됨)마저 농약중독으로 1983년 창경원동물원으로 옮겨졌지만 1994년 9월 끝내 숨을 거둠으로써 한반도 텃황새는 절종됐다.

충북 음성군 대소면 삼호1리 주민들이 마을 안 골목에 그린 벽화에 과거 함께 살았던 황새가 표현돼 있다./김성식
충북 음성군 대소면 삼호1리 주민들이 마을 안 골목에 그린 벽화에 과거 함께 살았던 황새가 표현돼 있다./김성식

삼호리에 살던 텃황새는 사라졌지만 주민 가슴 속에는 여전히 '그리운 새'로 남아 있다. 마을 주민의 자긍심이 깃든 마을 안내표지판에도 '황새가 살아 유명해진 마을'로 소개하고 마을 골목에 그려진 벽화에도 황새가 그려져 있다. 황새가 살던 황새나무는 이 마을 출향민의 영원한 정서적 랜드마크로서 고향모습을 대신한다.

◆진천 이월 중산리에도 '황새 기억이 또렷'

이에 앞서 찾아간 곳은 천연기념물 제134호였던 진천의 학번식지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 426번지에 있었던 이 학 번식지 역시 미호강 상류에 있다.

일을 나서기 전이어서 마을회관엔 제법 주민이 많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천연기념물 황새를 또렷이 기억하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23세에 결혼해 이 동네에 살면서 황새를 처음 봤다는 이금례(85)씨다.

이씨는 같은 집안 어른이 살았다는 한 고가를 소개하면서 뒤꼍 담장 쪽이 당시 황새가 살던 나무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6.25 전부터 황새가 살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 이 마을에 시집왔을 때 엄청 큰 미루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에 황새가 둥지를 틀고 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언제부턴가 황새 한 마리만 보였고, 홀로된 황새는 이후에도 꽤나 오래 살았다."

이씨의 증언은 비록 짧지만 미호강 텃황새와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진천의 학번식지'와 관련한 자료가 주소지, 지정면적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정비도 남아 있지 않은 데다 안내표지판도 없고 또 이를 기억하는 주민도 이씨 외에는 별로 없다.

이곳 중산리는 이월면 소재지 인근의 진천평야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최근엔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원예농업이 발달해 예전과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이날 주민 인터뷰를 마치고 미호강변에 서서 중산마을을 바라봤다. 그 많은 마을 가운데 당시 황새들은 왜 이 마을을 번식지로 택했을까. 112cm나 되는 큰 몸집에 새끼까지 키우려면 엄청난 먹이가 필요한 데 당시엔 그게 가능했다는 얘기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격세지감을 느끼며 발길을 돌렸다.

◆천연기념물 12호였던 진천 진나학도래군서지

미호강 상류에는 이들 2곳 외에도 황새 관련 천연기념물이 더 있었다. 진천 진나학도래군서지다.

이곳 역시 일제강점기에 진천군 이월면·광혜원면·덕산면 및 음성군 대소면 일원을 천연기념물 12호로 지정했고 해방 후 우리 정부가 1962년 12월 지정과 동시에 '가치 상실'을 이유로 지정 해제했다는 기본적인 내용 외에는 일반에 전해지지 않는다. 조선총독부 기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기록도 당시 행정용어로 돼 있어 일반이 이해하기가 힘들다.

다만 지정 번호(12호)로 보아 조선총독부가 천연기념물을 지정하기 시작한 직후에 지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과 명칭에 학도래군서지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학(당시 두루미와 황새를 통칭)이 해마다 찾아와 집단으로 살던 곳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 뿐이란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이 안 풀리는 것은 '진나(眞那)'란 명칭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