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가장 많이 관찰… 물고기 사체 먹는 청소부 역할

미호강의 단골손님이 된 한국재갈매기들이 작은 무리를 이뤄 날아들고 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미호강에서는 어렵지 않게 한국재갈매기들을 관찰할 수 있다./김성식
미호강의 단골손님이 된 한국재갈매기들이 작은 무리를 이뤄 날아들고 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미호강에서는 어렵지 않게 한국재갈매기들을 관찰할 수 있다./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기자〕 미호강의 겨울철새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단골손님으로 정착해 미호강 조류생태의 한 특성을 보여주는 종이 있다. 갈매깃과의 한국재갈매기(학명 Larus mongolicus)다.
 

◆"미호강에 웬 갈매기?"

미호강에 갈매기가 찾아온다면 요즘도 의아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예전엔 더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호강(당시 미호천) 갈매기 출현' 기사가 보도되면 바다에서나 사는 갈매기가 왜 미호강에서 발견되냐며 반문하기 일쑤였다. 당시엔 찾아오는 개체 수가 많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겨울이면 으레 찾아오는 낯익은 얼굴이 됐다. 나아가 미호강 조류생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 종으로 취급한다. 이번 편에서는 해마다 미호강을 찾아 겨울을 나는 한국재갈매기에 관해 살펴봤다.

◆한국재갈매기의 미호강 월동 실태

한국재갈매기 어린 개체가 미호강 모래톱에서 잉어 사체를 파먹고 있다. 미호강을 찾는 한국재갈매들은 주로 물고기 사체를 먹는 것으로 확인됐다./김성식
한국재갈매기 어린 개체가 미호강 모래톱에서 잉어 사체를 파먹고 있다. 미호강을 찾는 한국재갈매들은 주로 물고기 사체를 먹는 것으로 확인됐다./김성식

미호강에 갈매기류가 찾아오기 시작한 시기는 꽤 오래됐다. 1990년대부터 이미 미호강 일원에서 갈매기류가 극소수 관찰되기 시작했다. 이후 개체 수가 점차 늘어 2020년께부터는 적지 않은 수가 겨울철새로 정착했다.

이번 겨울 취재팀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한국재갈매기는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의 월동 기간 중 미호강에는 1~2월에 가장 많이 출현했다. 이 시기에는 한 장소에서 많게는 10개체 이상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5마리 이하의 작은 무리를 이뤘다. 중요한 건 이 무렵이 되면 미호강 수계에서는 거의 매일 한국재갈매기가 관찰될 정도로 '붙박이 월동 조류'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그런 가운데 어린 개체(유조)일수록 단독생활을 하는 것이 확인됐다. 어린 개체들은 아마도 어미들과 함께 생활할 경우 먹이를 차지할 기회와 순번이 불리하기에 단독생활을 하지 않을까 추정된다.

미호강에서 월동하는 갈매기가 주로 한국재갈매기란 사실이 밝혀진 것은 지난해였다. 기자가 지난해 충북과학기술혁신원의 2022 충북지역특화 콘텐츠개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작지만 세계적인 미호강' 콘텐츠 사업을 진행하면서 조류분야 자문위원인 조해진 박사(한국환경생태연구소)에게 종의 동정(同定)을 의뢰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한국재갈매기는 과거 노랑발갈매기(Larus cachinnans, 영명 Yellow-legged Gull)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 들어 별개의 종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재갈매기의 아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 박사는 지난 4일에도 지난해와 같은 동정 결과를 내놨다. 중부매일 취재팀이 촬영한 사진을 보내 동정을 의뢰한 결과 "재갈매기류는 변이가 심하고 잡종인 경우가 많아 자세한 동정이 쉽지 않다"는 전제 아래 몇 가지 특징을 들면서 "2022~3년 겨울 미호강에서 월동한 갈매기류는 주로 한국재갈매기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 박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렇다. 한국재갈매기는 영어로 몽골갈매기(Mongolian Gull)로 불리는 것처럼 몽골 북부, 중국 동북부 등의 내륙 호숫가에서 번식하기 때문에 이동 루트가 주로 내륙을 따라 이뤄지는 특성이 있다. 한국재갈매기가 내륙의 민물수역에서도 곧잘 관찰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안가에서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에 비해 러시아 동쪽 추코트 반도 등이 주요 번식지인 재갈매기는 주로 해안을 따라 사할린 쪽으로 이동해 번식지로 가거나 해안가 부근에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재갈매기는 생김새에 있어서도 머리 부위가 매우 희게 보이는 등 전체적으로 밝게 보인다. 어린 개체 역시 밝은 느낌의 무늬와 반점을 갖는다. 반면 재갈매기의 어미와 어린 개체는 한국재갈매기 보다 좀 더 어두운 느낌이 든다.

◆먹잇감인 물고기 사체의 비밀

수달이 먹다 버린 메기 사체를 까치가 파먹고 있다. 미호강의 물고기 사체는 겨울철새들의 주요 먹이원 역할을 한다./김성식
수달이 먹다 버린 메기 사체를 까치가 파먹고 있다. 미호강의 물고기 사체는 겨울철새들의 주요 먹이원 역할을 한다./김성식

미호강을 찾는 한국재갈매기들은 무엇을 먹을까. 관찰 결과 한국재갈매기들은 겨울철 미호강에서 붕어, 잉어 같은 물고기 사체를 먹어치우는 청소부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고기를 주로 먹되 직접 잡아먹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죽은 물고기를 찾아 먹거나 찾아다니는 게 주된 일과였다.

미호강에서 물고기 사체가 겨울철새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왜냐면 미호강을 찾는 새 가운데 물고기 사체를 즐겨 먹거나 배고픔을 해결할 차선의 먹잇감으로 삼는 종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텃새인 까마귀와 까치는 물론 심지어 대형 맹금류인 독수리와 흰꼬리수리까지 물고기 사체를 놓고 먹이다툼을 벌인다. 여기에 더해 한국재갈매기마저 물고기 사체를 먹는다.

겨울에도 번식지로 이동하지 않고 미호강에 남아 월동하는 왜가리도 경쟁자 중 하나다. 2021년 3월엔 미호강을 찾은 황새 한 마리가 1주일 가량 머물면서 하루에 한 마리 이상의 대형 물고기 사체를 찾아내 집어삼키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새들의 먹잇감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자 새들로 하여금 어느 지역에 찾아와 머물도록 하는 중요 모티브가 되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호강 겨울철새의 중요 먹을거리인 물고기 사체는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날까. 그 출처가 궁금해 추적해 봤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미호강의 물고기 사체는 의외의 과정을 통해 생겨났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최근 미호강 수계에 개체 수가 부쩍 많아진 민물가마우지의 역할이 크다는 점이다. 민물가마우지는 잠수력과 먹이 포획력이 뛰어나 30~40cm 이상의 대형 붕어와 잉어를 곧잘 잡아낸다. 하지만 먹잇감이 너무 클 땐 삼키지 못하고 거의 다 죽어가는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경우가 있다. 민물가마우지 쪽에서 보면 과한 욕심이 가져온 헛발질에 불과하지만 같은 수생태계 내의 다른 새들에겐 먹잇감을 제공하는 '엉뚱한 기여자'로 작용한다. 기존 생태계 먹이사슬의 파괴자로 지목돼 온 민물가마우지가 아이러니하게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수달도 때로는 이런 '엉뚱한 기여자'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미호강, 특히 청주 무심천 합수부 일원에는 수달이 서식하는데 이들이 먹이활동을 하면서 잡은 물고기를 모두 먹지 않고 일부를 물가에 내버려 두는 경우가 있다.

미호강에서 낚시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엉뚱한 기여자' 역할을 한다. 미호강에서는 언제부턴가 훌치기란 독특한 방법의 낚시가 성행하고 있다. 이 낚시의 특징은 커다란 바늘 3개가 달린 삼발이 형태의 낚시바늘을 릴낚시대에 매달아 멀리 던진 후 여러 차례 힘껏 끌어당기는 식으로 물고기를 낚아채는 일종의 '깜깜이 낚시' 방법이다.

그런데 이 훌치기 낚시꾼 중에 일부는 잡은 물고기를 그대로 놓아주거나 물 바깥에 방치했다가 죽은 뒤에 혹은 다 죽어가는 물고기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 낚시로 물고기를 낚게 되면 큰 바늘로 아무 부위나 닥치는 대로 걸어 올리기 때문에 금세 풀어준다고 해도 상처가 쉽사리 아물지 않고 각종 세균에 감염돼 결국 죽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법 논란'이 끊이지 않는 낚시 방법이 물고기 사체를 먹고 사는 새들에겐 오히려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셈이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큰검은머리갈매기'도 길 잃은 새로 출현

'흔하지 않은 길 잃은 새' 큰검은머리갈매기가 미호강 상공을 날고 있다./김성식
'흔하지 않은 길 잃은 새' 큰검은머리갈매기가 미호강 상공을 날고 있다./김성식

미호강에서는 또 큰검은머리갈매기도 관찰됐다. 조해진 박사는 "큰검은머리갈매기에 대한 국내 기록을 찾아보니 충남 천수만에서 발견된 적 있는 길 잃은 새(미조)로 확인됐다"며 "흔하게 찾아오는 새는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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