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먹이·휴식터 확보' 최대 과제
전문가 "해당지자체·주민 협업 절실"

미호평야의 한 들녘에 눈이 내리는 가운데 재두루미와 고라니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야생동물과 축사가 공존하는 이 모습이 미호평야의 현주소다./김성식
미호평야의 한 들녘에 눈이 내리는 가운데 재두루미와 고라니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야생동물과 축사가 공존하는 이 모습이 미호평야의 현주소다./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2023년 겨울은 미호강 생태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호강 생태계의 변천사에 뚜렷한 변곡점을 남긴 겨울이다. 그 변곡점의 정점을 찍은 대사건이자 미호강 생태계의 빅뉴스가 바로 재두루미(Grus vipio)의 이례적 방문이다.

중부매일 취재팀은 이번 겨울 미호강을 찾은 재두루미의 방문이 얼마나 이례적인가를 집중조사를 통해 밝혀냈다. 3편에서 전했듯이 취재팀은 53일간의 조사기간 중 37회에 걸쳐 모두 809마리의 재두루미를 관찰했다.

 

미호강, 재두루미 월동지로 급부상 

미호평야를 찾은 30여 마리의 재두루미들이 먹이터로 내려앉고 있다. 미호평야에는 최근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철새들의 먹이터 역할을 하는 농경지가 갈수록 줄고 있다./김성식
미호평야를 찾은 30여 마리의 재두루미들이 먹이터로 내려앉고 있다. 미호평야에는 최근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철새들의 먹이터 역할을 하는 농경지가 갈수록 줄고 있다./김성식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올해 2월 8일까지 진행한 이번 조사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선 관찰되는 재두루미 숫자에 놀랐다. 37회의 조사 중 하루 20마리 이상 관찰된 횟수가 23회에 이른다. 30마리 이상 관찰된 게 6차례다. 올해 2월 3일엔 52마리가 확인돼 최고기록을 남겼다.

더욱 놀란 건 37회의 현지조사 때마다 100% 재두루미가 관찰됐다는 점이다. 매번 재두루미가 관찰됐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53일간의 조사기간 중 현지조사를 하지 않은 날에도 재두루미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았음을 뒷받침한다. 적어도 이번 겨울만큼은 재두루미가 미호강 주변에 줄곧 출현했음을 추정 가능케 하는 배경이 된다.

또 주목할 것은 관찰된 무리의 상당수가 미호강 주변에 머물며 겨울을 지낸 '월동개체'였다는 점이다. 모습을 드러냈다가 2~3일 만에 떠난 깜짝출현 개체도 있지만 그보다는 많은 수가 오랜 기간 머물렀다. 이는 미호강의 생태적 기능과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 재두루미가 잠시 들렀다 가는 중간기착지로서의 미호강이 아니라, 상당수의 재두루미가 찾아와 겨울을 나는 월동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앞서 변곡점의 정점을 찍은 대사건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무심천 합수부를 중심으로 나타난 사례를 미호강 생태 전반에 적용해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무심천 합수부 일원이 미호강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감안하면 그리 큰 무리수는 아닐 성싶다.

 

전문가 "철새 서식환경 개선 가능성" 제시

재두루미들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각지대를 찾아 먹이를 먹고 있다./김성식
재두루미들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각지대를 찾아 먹이를 먹고 있다./김성식

그동안 언론을 통해 이따금씩 전해졌던 재두루미 출현 소식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관찰기록이 없던 미호강에 재두루미가 이례적으로 많이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조류전문가 조해진 박사(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의미 있는 해석을 내놨다.

그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특별한 해다. 재두루미의 최대 월동지인 일본 이즈미 지역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의해 많은 개체가 희생된 이후 우리나라로 대거 몰려들었다. 그런 데다 최근 이동시기를 맞아 북상하기 시작한 개체들이 찾을 가능성도 높아진 영향이 클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미호강의 철새 서식환경이 개선돼 방문 개체수가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미호강 주변의 철새 서식환경이 양호해져 재두루미들을 불러들였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극도로 예민… 인적 드문 곳서 먹이·휴식 활동

미호평야의 한 경작지에서 농기계가 퇴비를 뿌리고 있고 옆논에서는 재두루미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사람에게 매우 예민한 재두루미가 농기계와 차량에는 무딘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김성식
미호평야의 한 경작지에서 농기계가 퇴비를 뿌리고 있고 옆논에서는 재두루미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사람에게 매우 예민한 재두루미가 농기계와 차량에는 무딘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김성식

이번 겨울 미호강 주변을 찾은 재두루미들은 극도로 예민했다. 특히 사람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민했다. 개체수가 드문 희귀종일수록 나타나는 특성이다. 조사·취재 기간 내내 재두루미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의외로 흰꼬리수리 같은 맹금류의 출현에는 무딘 반응을 보였다. 몸길이가 약 130㎝ 되는 대형종이어서 그들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그런 반면 사람의 접근은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찾는 먹이터를 보면 그런 속내가 읽힌다. 한쪽은 막혀 있고 다른 곳은 훤히 트인 곳을 선호한다. 같은 들판에서 먹이터를 선택할 때도 주변에 높은 둑이나 제방이 있는 사각지대를 택한다. 또 먹이터 인근에 하천이 흐르고 모래사장 같은 개활지가 있는 곳을 좋아한다. 천적에게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 천적의 움직임을 재빨리 알아채고 도망치기 위한 생존본능으로 여겨진다.

월동시기 재두루미의 일과는 하루 대부분을 먹이를 먹거나 휴식하며 지낸다. 먹이로는 주로 벼낟알, 풀씨, 풀뿌리 등을 먹는다. 먹이활동이 끝나는 해질 무렵이면 강가 모래사장 등으로 이동해 잠자리에 드는 모습이 관찰됐다. 낮 시간에도 강변을 찾아 휴식하기도 한다.

 

해당 지자체·주민, 재두루미 보호 맞손 절실

재두루미들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각지대를 찾아 먹이를 먹고 있다./김성식
낮 시간에 미호강을 찾은 재두루미들이 얼음 위를 걷고 있다./김성식

전문가들은 미호강과 미호평야가 재두루미 월동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먹이터와 휴식터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미호강을 찾아 겨울을 보내면서 주로 하는 활동이 먹이활동과 휴식이기 때문에 그렇단다. 사람의 접근을 유독 싫어하는 습성을 감안하면 반드시 '안정된 먹이터와 휴식터 마련'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취재팀이 눈여겨본 결과 재두루미가 미호강을 떠나 북상하는 시기가 먹이터인 농경지에서 농사일이 시작되는 시기와 겹친다. 미호평야의 경우 2월 초가 되면서 농기계로 논에 퇴비 등을 뿌리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고, 이 시기가 되자 재두루미들이 이동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과 함께 축사 등 각종 시설물로 갈수록 줄어드는 농경지 문제도 재두루미 정착을 위해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올해를 기점으로 개체수가 많아진 재두루미들이 내년에도 대거 찾아올 경우를 생각해 대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이다. 대비책의 시작은 겨울진객 재두루미가 미호강 일원에 가져온 절호의 기회를 해당 지자체, 지역민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보호 필요성을 자각하는 일부터 필요하다.

조해진 박사는 "철새를 안전하게 지켜나가는 일은 해당 지자체, 경작지 농민뿐만 아니라 지역민·단체가 모두 머리를 맞대고 노력할 때 가능하다"며 "미호강 일대에서 소중한 생물자원 재두루미들이 무리 지어 건강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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