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기 이후 북상 앞둔 시점에 출현… 예비월동지 역할 기대

미호강 수계의 백곡지와 초평지를 찾았던 가창오리들은 비록 다른 월동지에 비해 규모가 작고 펼치는 시간도 짧았지만 거의 매일 먹이터로 가기 전에 습관처럼 군무를 펼쳤다. 사진은 가창오리들이 군무를 펼치기 위해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장면./김성식
미호강 수계의 백곡지와 초평지를 찾았던 가창오리들은 비록 다른 월동지에 비해 규모가 작고 펼치는 시간도 짧았지만 거의 매일 먹이터로 가기 전에 습관처럼 군무를 펼쳤다. 사진은 가창오리들이 군무를 펼치기 위해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장면./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환경생태전문기자] 가창오리(학명 Anas formosa, 영명 Baikal Teal)는 우리나라 조류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국내 겨울철새의 약 80%를 차지하는 무리가 오릿과인데, 그 오릿과 겨울철새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게 가창오리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국내 겨울철새의 추이를 좌우하는 대표적인 새다.

가창오리는 또 전 세계 집단의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월동하는 새로 유명하다. 종 보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월동기를 대부분의 개체가 우리나라에서 보내는 숙명의 새다.
 

종 특성인 군무 '세계적 볼거리' 명성

진천 백곡저수지를 찾은 가창오리들이 수면 위를 날면서 군무를 펼치고 있다./김성식
진천 백곡저수지를 찾은 가창오리들이 수면 위를 날면서 군무를 펼치고 있다./김성식

이러한 존재가 국내외에서 더욱 유명해진 것은 세계 유수의 매체와 국내 유명 프로그램이 가창오리를 집중 소개한 게 계기가 됐다. 특히 가창오리 수십만 마리가 펼치는 군무(群舞)는 경이롭다 못해 충격적이란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가창오리의 군무는 이 오리가 얼마나 강한 군집성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큰 종 특성이다. 가창오리의 군무는 주로 해가 진 직후 먹이터로 가기 전에 대열 정비 혹은 세 과시를 위해 펼치는 것으로 이해된다.

백곡지와 초평지를 찾은 가창오리들도 비록 규모가 작고 펼치는 시간이 짧았지만 거의 매일 먹이터로 가기 전에 습관처럼 군무를 펼쳤다. 낮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수면 위에 뜬 채로 휴식을 취했다. 그런 후 야행성답게 해가 진 직후부터 군무를 펼치며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군무가 그들의 본격 활동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가창오리들은 군무를 펼친 뒤 거의 어두워진 시간에 인근 진천평야나 미호평야에 도착해 먹이활동을 시작했다.

 

상황 악화로 황급히 이동했을 가능성 높아

전문가들은 미호강 수계를 찾았던 가창오리들이 갑자기 사라진 시점과 관련해 이들이 머물렀던 진천 백곡지와 초평지에서 보트낚시 활동이 본격화한 시점과 맞물리는 점에 주목한다. 사진은 백곡지에서 낚시 보트(원내)가 접근하자 날아오르는 가창오리 모습./김성식
전문가들은 미호강 수계를 찾았던 가창오리들이 갑자기 사라진 시점과 관련해 이들이 머물렀던 진천 백곡지와 초평지에서 보트낚시 활동이 본격화한 시점과 맞물리는 점에 주목한다. 사진은 백곡지에서 낚시 보트(원내)가 접근하자 날아오르는 가창오리 모습./김성식

백곡지와 초평지를 찾은 가창오리는 공교롭게도 중부매일이 지난 3일자로 '세계적인 생명터 미호강 대탐사 (5)가창오리 4만여 마리 월동 중' 기사를 낸 직후 사라졌다. 번식지인 시베리아를 향해 북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동 시기가 돼 떠난 것인지, 주변 상황이 급변해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 시각이다. 중부매일 보도일자인 지난 3일이 금요일이었기에 그다음 날부터 이어진 연휴 주말 상황과 이들의 이동이 관련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특히 두 저수지 상황을 잘 아는 한 전문가는 보트를 이용한 낚시활동이 본격화한 시점이 4~5일 주말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취재팀의 확인에서도 두 저수지에서 주말 동안 보트 낚시객이 잇따라 목격돼 그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이 전문가는 "보트낚시 자체를 지적하는 게 아니다. 향후 가창오리가 다시 찾아올 경우에 대비해 고려 및 개선할 사항으로 제기하는 것"이라며 "가창오리가 머무는 동안에는 보트낚시 등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빙기 이후의 '예비 월동지' 성격

이번 미호강 수계를 찾았던 가창오리는 저수지 얼음이 녹는 해빙기 이후 약 20일간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겨울날씨를 고려할 때 2월 10일쯤을 전후해 날아와 3월 초까지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머무는 점을 감안하면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머문 시기가 해빙기 직후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가창오리가 북상을 앞두고 다시 큰 집단를 이뤄 이동 준비에 집중하는 시기다.

그래서 해빙기 이후 북상할 때까지 머물 예비 월동지로서 미호강 수계까지 날아들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조류전문가 조해진 박사(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가창오리는 월동기 초 도착 직후에는 작은 무리로 나눠지는 경향이 있으나 해빙기 이후에는 북상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큰 집단을 이루는 습성이 있다. 이번에 미호강을 찾았던 무리는 금강하구 등지에 재집결한 큰 집단의 일부가 떨어져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미호강의 두 저수지가 휴식터 역할을 하고 인근에는 진천평야와 미호평야 같은 먹이터가 위치해 있어 해빙기 이후에 머물 예비 월동지로 선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창오리 떼의 이례적 출현이 갖는 의미

이번 사례는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에도 이같은 사례가 있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해서 이번이 처음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최근 미호강 중하류의 사례를 감안하면 아예 가능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번 미호강 대탐사를 진행하고 있는 기자는 2022년 3월 2일 미호강 중하류인 청주 작천보에서 10여 마리의 가창오리를 관찰한 바 있다. 이후 발간한 '미호강의 생명이야기'에서 기자는 '금강하류에는 해마다 수많은 가창오리가 찾아와 겨울을 나는데 이 무리 중 일부가 이탈해 미호강까지 거슬러 올라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청주 작천보에서 소수 개체이지만 가창오리가 관찰된 지 1년 만에 같은 수계의 상류인 진천 백곡지와 초평지에서 약 4만여 마리의 가창오리가 발견됐다. 가능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막상 현실로 나타나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한 당사자로서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가창오리의 이례적 출현은 미호강의 생태적 기능과 역할에 중요성을 더해준 또 하나의 '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미호강은 그동안 각종 철새의 중간기착지이자 월동지로서 역할을 해왔다. 여기에 더해 국내 겨울철새의 대명사인 가창오리까지 미호강 수계를 찾아 일정기간 머물다 간 것이 전격 확인됨으로써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가창오리가 앞으로도 찾아올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점에서 획기적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미호강은 금강과 함께 한반도 바다와 내륙의 생태계를 잇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미호강 수계의 가창오리 떼'는 미호강의 이러한 생태통로 역할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실증사례다. 지도는 구글맵 갈무리.
미호강은 금강과 함께 한반도 바다와 내륙의 생태계를 잇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미호강 수계의 가창오리 떼'는 미호강의 이러한 생태통로 역할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실증사례다. 지도는 구글맵 갈무리.

미호강은 또 금강과 함께 한반도 바다와 내륙의 생태계를 잇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왔다. 갈매기류 같은 바다새들이 금강~미호강으로 이어진 생태통로를 타고 미호강 중류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는 촉매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 확인된 가창오리의 이례적 출현 사례도 이러한 생태통로 기능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실증사례다.

더 중요한 건 이번 사례가 가창오리의 보전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타고난 군집성으로 거대집단을 이루는 종 특성상 월동지의 다양화가 요구되는데 이번 사례가 바로 그런 요구에 청신호를 준다. 특히 향후 해빙기 이후의 예비 월동지로 자리매김할 경우 북상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월동지 다양화 및 종 보전에 큰몫을 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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