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월동 독수리들 '중간 기착지'로 정착… 먹이부족 심각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흔하지 않던 독수리가 이제 미호강을 대표하는 맹금류이자 겨울철새로 자리잡아 겨울이면 10여 마리가 하천변에 앉아 휴식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사진은 미호강 작천보를 찾은 독수리들이 먹잇감을 발견하고 몰려들자 까마귀까지 날아와 요란해진 모습./김성식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흔하지 않던 독수리가 이제 미호강을 대표하는 맹금류이자 겨울철새로 자리잡아 겨울이면 10여 마리가 하천변에 앉아 휴식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사진은 미호강 작천보를 찾은 독수리들이 먹잇감을 발견하고 몰려들자 까마귀까지 날아와 요란해진 모습./김성식

〔중부매일 김성식 기자〕미호강 생태계에서 변화가 비교적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분야 중의 하나가 조류분야다. 미호강의 조류 생태에 관심 있는 전문가들은 미호강 수계에서 관찰되는 새의 종류와 월동 유형, 이동 유형이 2020년 무렵부터 예전에 비해 상당 부분 변했다고 분석한다. 미호강 현지에서 만나는 조류사진가들 역시 비슷한 견해다.

그중 하나가 독수리를 비롯한 맹금류의 출현 빈도가 2020년 이후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맹금류 중에서도 특히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 맹금류, 이른바 '미호강의 낮을 지배하는 제왕들'의 숫자가 늘고 있단다.

이같은 추세는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조사 자료와도 맥을 같이 한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조사 자료(최근 5년간 연간 충청북도의 맹금류 개체수 변화)에 따르면 2020년을 기점으로 미호강 수계(미호강 본류와 지류인 병천천, 무심천, 보강천 포함)에 맹금류가 유의미하게 늘어난 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월 20일 미호강(청주 무심천 합수부)을 찾은 독수리 한 마리가 폐비닐을 물어뜯자 까마귀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호강의 독수리 먹이 부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김성식
지난 2월 20일 미호강(청주 무심천 합수부)을 찾은 독수리 한 마리가 폐비닐을 물어뜯자 까마귀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호강의 독수리 먹이 부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김성식

맹금류는 대부분 천연기념물,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된 법정 보호종이며, 국제적으로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무역에 관한 협약(CITES) 등에 의해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이들은 생태계 내에서 중요한 기능을 맡는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으면서 조절자 역할을 한다. 생태계의 건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생물이다. 먹이사슬에 있어 소형조류, 설치류 등 작은 동물의 숫자가 늘면 그들의 포식자인 맹금류 등의 숫자도 늘어나게 된다. 미호강 생태계와 관련해 맹금류의 개체 수 변화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미호강의 대표 맹금류가 된 독수리

미호강 생태계의 변화를 실감하는 시기는 겨울철이다. '낮의 제왕들'이 주로 출현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겨울철새로 찾아오는 맹금류의 개체 수가 많아진 데다 텃새인 맹금류들도 이 시기에 자주 강 주변에 나타난다.

우선 개체 수가 최근 들어 부쩍 많아진 수릿과의 독수리{학명 Aegypius monachus, 천연기념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자료목록에 NT(준위협) 종으로 분류}부터 살펴본다.

미호강의 독수리는 2020년 무렵부터 갑자기 개체 수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소수 개체가 이따금 나타나 언론에 소개될 만큼 흔하지 않은 겨울진객이었으나 2020년 무렵부터 개체 수가 크게 늘기 시작해 지금은 미호강을 대표하는 맹금류이자 겨울철새로 자리 잡았다.

특기할 사항은 이들 독수리 대부분이 미호강에 잠시 들었다 가는 통과새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미호강을 찾는 목적이 장기간 머물며 겨울을 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들른다는 얘기다. 한반도 중부내륙에 위치한 미호강이 남쪽지역을 오가는 독수리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배경에는 한반도를 찾는 독수리들의 월동 및 이동 유형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8~9년만 해도 철원평야에 연간 300마리 이상 나타나던 독수리가 2020~21년엔 80여 마리로 줄어들었고 2022년엔 20여 마리로 감소했다. 오두산 전망대 부근의 임진강 일원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독수리 개체 수가 급감했다.

이에 반해 경남 고성군 대가저수지 인근에는 2018~9년 무렵부터 연간 약 400마리가, 경남 김해시 화포천에는 2019년부터 많게는 약 200마리, 적게는 수십 마리의 독수리가 찾아와 월동한다. 국내 독수리 월동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이다.

이같은 변화가 있은 후 미호강의 조류 생태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2020년 무렵부터 독수리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해 해가 갈수록 숫자가 느는 추세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독수리들이 한반도 남쪽지역에서 월동하게 되면서 그곳을 오가는 도중 미호강에 들렀다 가는 개체들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미호강 상공을 활공하는 독수리들. 독수리는 사냥을 하지 않고 죽은 동물의 사체를 주로 먹어치우는 생태계의 청소부다./김성식
미호강 상공을 활공하는 독수리들. 독수리는 사냥을 하지 않고 죽은 동물의 사체를 주로 먹어치우는 생태계의 청소부다./김성식

그런데 특이한 것은 미호강을 찾는 독수리들은 월동을 위해 남하하는 시기보다는 매년 1월 이후부터 북상 시기인 3월 초·중순쯤에 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특히 2월 중순 이후가 되면 10~20마리 이상의 독수리가 관찰되는 날이 많아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장소에서 30~40마리가 관찰되기도 한다.

독수리가 주로 관찰되는 지점은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동평리 미호대교에서 오송읍 궁평리 미호천교 사이, 청주시 신촌동 옥산교에서 오창읍 팔결교 사이, 진천군 이월면 장양교에서 음성군 대소면 삼호3교 사이의 하천변 개활지(모래사장 등)와 인근 평야지대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지점은 청주시 관내 무심천 합수부(작천보)와 인근 미호평야다.

◆독수리 먹이부족 문제 '심각 수준'

미호강을 찾는 독수리 숫자가 늘면서 한 가지 불거진 것이 먹이 부족에 따른 건강악화 문제다. 과거와 달리 동물 사체를 함부로 내다 버리지 못하도록 한 데 따른 불똥이 습성상 사냥을 하지 않고 죽은 사체를 주로 먹는 독수리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미호강 주변의 심각한 먹이부족 현상은 이곳을 찾는 독수리들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세 떠나는 이유로 작용한다.

오죽 먹잇감이 없으면 잉어 등 물고기 사체를 놓고 덩치 큰 독수리들이 떼로 몰려들어 먹이다툼을 벌이고 굶주림에 참다못한 일부 독수리는 폐비닐 혹은 마댓자루 등을 먹잇감인 양 물어뜯어 삼키는 처절한 장면이 목격될 정도다.

미호강을 찾은 독수리 4마리가 머리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잉어 사체(화살표)를 서로 차지하려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김성식
미호강을 찾은 독수리 4마리가 머리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잉어 사체(화살표)를 서로 차지하려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김성식

'세계적인 생명터 미호강 대탐사' 취재팀은 지난 1월 25일 청주 작천보 안 모래톱에서 머리와 뼈만 남은 잉어 사체를 놓고 독수리 4마리가 서로 차지하려고 연신 기싸움과 먹이다툼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2월 20일에는 청주 무심천 합수부 상류지점에서 모래에 파묻혀 있던 폐비닐을 부리로 물어 끌어낸 다음 마치 먹잇감인 양 물어뜯다가 일부는 집어삼키는 독수리도 관찰됐다.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청주시민 박모씨(43.회사원)는 "인근 제방도로를 지나다가 독수리가 보이기에 잠시 차에서 내렸다가 우연히 독수리가 폐비닐을 물어뜯어 삼키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럴까 싶어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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