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간 잇단 출현… 국내 분포도 바꿀 '조류생태계의 큰 이변'

편집자

미호강은 한반도 중부내륙을 흐르면서 강 끝이 바다와 만나지 않는 특별한 물줄기다. 한남금북정맥이 한강과 금강 수계를 나누며 지나는 충북 음성군 삼성면 마이산(472m)에서 발원해 세종시 연동면 합강리 인근에서 금강으로 흘러들기까지 89.2km를 흐른다.

이런 내륙의 강에 국제보호조류 노랑부리저어새(학명:Platalea leucorodia, 영명:Eurasian Spoonbill)가 지난 겨울 연이어 찾아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습지와 하구, 간척지, 제주도 등에서나 관찰되던 겨울철새가 돌연 내륙 깊숙한 곳에서, 그것도 여러 차례에 걸쳐 출현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세계적인 생명터 미호강 대탐사'를 진행 중인 중부매일 취재팀이 처음 확인해 독자와 학계에 전한 '노랑부리저어새의 잇단 내륙행'을 자세히 살펴본다.

 

지난 1월 18일 노랑부리저어새들이 미호강 특유의 모래사장 위를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이런 광경은 노랑부리저어새가 미호강에 잇따라 출현하기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광경이다./김성식
지난 1월 18일 노랑부리저어새들이 미호강 특유의 모래사장 위를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이런 광경은 노랑부리저어새가 미호강에 잇따라 출현하기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광경이다./김성식

 

◆한 달 사이에 8차례 21마리 출현

지난 겨울 노랑부리저어새가 미호강에 처음 나타난 것은 2023년 1월 8일 낮 12시쯤으로, 어린 개체(유조) 1마리가 충북 청주시 관내의 무심천 합수머리 지점에 홀연히 나타났다. 뜻밖의 손님을 맞은 취재팀은 이후부터 약 한 달간의 집중 추적을 진행했다.

그 결과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약 한 달 사이에 모두 8회에 걸쳐 21마리를 관찰했다. 1회당 평균 약 2.6마리가 관찰된 셈이다. 가장 많은 개체 수가 나타난 날은 1월 18일로 6마리가 관찰됐으며 그다음은 1월 10일 4마리가 출현했다.

미호강 노랑부리저어새 관찰일지 도표
미호강 노랑부리저어새 관찰일지 도표

특기 사항으로는 미호강을 찾았던 21마리의 노랑부리저어새 모두가 어린 개체였다는 점이다. 연한 갈색의 부리에 날개 끝이 검은색을 띠는 등 모두가 어린 개체의 특징을 지녔다. 이동 경험이 있는 어미새는 출현하지 않고 이동 경험이 적은 어린새들만 나타났다는 점에서 길잃은 새(미조)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쩌다 한두 번쯤 들른 것이 아니라 약 4일에 한 번꼴로 한 달간에 걸쳐 평균 약 2.6마리가 연이어 나타난 점은 이들의 출현 성격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라 생각된다.

이들 노랑부리저어새는 유난히 흰꼬리수리 같은 천적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1마리일 때는 물론 2마리 이상일 때에도 왜가리, 대백로 같은 다른 종의 무리 곁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러다가도 천적이 나타나기만 하면 황급히 달아나는 등 과민반응을 보였다. 어린 데다 큰 무리를 이루지 않고 지내는 개체들의 방어본능이자 생존본능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미호강을 찾았던 노랑부리저어새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휴식하는 데 집중해 먹이활동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철새들처럼 일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계속 이동하는 습성이 있어 그런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가운데 이번 집중 관찰 기간 중 6마리가 한곳에 모여 먹이활동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다.

◆노랑부리저어새의 잇단 내륙행이 갖는 의미

국립생물자원관의 '한눈에 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에 실린 노랑부리저어새의 국내 분포도를 보면 이 새가 어떤 서식·분포 특성을 갖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분포도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 새는 주로 바다와 가까운 습지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바다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의 모든 분포지가 바다와 가깝다.

이런 서식·분포 특성을 가진 새가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에서, 한 달 가까이 약 4일에 한 번꼴로 평균 3마리 가량 연이어 나타났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그동안 금강 수계에서 이따금 노랑부리저어새가 소수 발견된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모두가 단발성에 불과했기에 이번 미호강의 사례와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미호강을 찾은 6마리의 노랑부리저어새들이 한 곳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대백로 한 마리가 미호강에서 보기 힘든 광경에 당황한 듯 바라보고 있다./김성식
미호강을 찾은 6마리의 노랑부리저어새들이 한 곳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대백로 한 마리가 미호강에서 보기 힘든 광경에 당황한 듯 바라보고 있다./김성식

우선 이번 사례는 미호강의 조류상에 중요 종 1종을 더하는 계기가 됐다. 노랑부리저어새는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야생생물(Ⅱ급)이자 한국적색목록에 취약종(VU)으로 분류된 희귀 겨울철새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는 관심대상종(LC)으로 평가돼 있다.

종 다양성 측면에서 보전 가치가 높은 종 하나가 늘었다는 것은 미호강의 생태적 지위가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생물종이 사라지면 사라졌지 늘어나는 추세가 아님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중요 종 하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노랑부리저어새가 찾아오지 않았을 때의 미호강 생태계와 찾아온 이후의 생태계 모습은 격이 다르게 느껴진다.


실제로 노랑부리저어새의 잇단 출현은 미호강의 생태계 모습에 변화를 가져왔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미호강 특유의 모래사장 위를 노랑부리저어새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이 새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극적인 광경이다. 하지만 잇단 출현이 있은 후의 지금은 '낯익은 풍경'이 됐다. 이런 변화가 불과 1~2개월 전에 찾아왔다.

이번 사례를 한반도 생태계의 또 다른 변화 조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반도의 기후 환경이 바뀜에 따라 이 땅을 찾는 조류의 이동 패턴에도 변화가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신호탄이란 얘기다.

조해진 박사(한국환경생태연구소)는 "중국의 연해주 등에서 번식한 노랑부리저어새들이 기존처럼 중국의 남부로 이동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찾는 개체 수가 많아지는 것은 기후 등 서식환경 변화에 따른 이동 패턴의 변화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지난 1월 11일 충북 청주 무심천 하류를 찾은 노랑부리저어새 2마리가 물가에 앉아 휴식하고 있다./김성식
지난 1월 11일 충북 청주 무심천 하류를 찾은 노랑부리저어새 2마리가 물가에 앉아 휴식하고 있다./김성식

조 박사는 이어 "우리나라를 찾은 노랑부리저어새 가운데 미호강을 찾는 개체 수와 횟수가 늘어나는 것은 한편으론 먹잇감이 풍부해지는 등 서식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례는 또 금강과 미호강이 바다(서해)와 내륙의 생태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즉 생태통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재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바다새인 갈매기류 등이 금강~미호강으로 이어진 물길을 타고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것처럼 노랑부리저어새 역시 이 물길을 따라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미호강에서 일어났던 노랑부리저어새의 잇단 방문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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