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미호종개·흰수마자' 함께 발견된 국내 유일 서식처

강바닥이 모래인 '특별한 모래하천'

'모래의 강' 미호강 전경미호강은 강바닥 대부분이 모래로 이뤄진 독특한 하천이다. 고운 모래가 쌓인 모래사장을 강 수계 어딜 가나 손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모래하천의 특성은 미호강을 생명의 강으로 자리 잡게 한 중요한 환경요인이다. 사진은 충북 청주 인근 미호강을 찾은 겨울철새 황오리들이 먹이터로 이동하고 있다./김성식
'모래의 강' 미호강 전경미호강은 강바닥 대부분이 모래로 이뤄진 독특한 하천이다. 고운 모래가 쌓인 모래사장을 강 수계 어딜 가나 손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모래하천의 특성은 미호강을 생명의 강으로 자리 잡게 한 중요한 환경요인이다. 사진은 충북 청주 인근 미호강을 찾은 겨울철새 황오리들이 먹이터로 이동하고 있다./김성식

미호강은 특별한 모래하천이다. 강바닥의 대부분이 모래로 이뤄진 독특한 하천이다. 강 주변에 얕은 산지와 구릉이 많고 사양질 토양이 대부분이어서 강바닥은 두꺼운 모래층을 이룬다. 물흐름은 완만하고 강 유역 곳곳에 고운 모래가 지천으로 깔린 게 미호강의 본 모습이다.

미호강의 모래는 예부터 유명했다. 미호강 중류에는 지금도 평사(平沙)마을로 불리는 곳이 있다. 평사마을은 충북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의 자연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강 옆으로 평편한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 오래전부터 평사마을로 불렸다. 특히 이 마을엔 평사십리(平沙十里)라는 모래사장이 있었을 정도로 모래사장의 규모가 대단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 마을 강변 곳곳에 모래사장이 남아 있다.

미호강은 이곳 외에도 모래사장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자갈과 바위보다는 고운 모래가 쌓인 모래사장을 강 수계 어딜 가나 손쉽게 볼 수 있다. 미호강 하면 모래사장이요 모래사장 하면 미호강이라고 할 만큼 미호강과 모래사장은 불가분의 관계다.

모래하천은 많은 양의 물을 머금은 채 느린 속도로 복류(伏流)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건조해 보여도 속은 물먹은 스폰지 같아 많은 생명체를 보듬을 수 있다. 미호강은 하천 길이에 비해 유역면적이 넓은 데다 연평균 강수량이 1200mm를 넘어 유량도 비교적 풍부하다. 반면 하천 경사도는 완만해 유속이 빠르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물고기를 비롯한 각종 생물들의 서식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호강 수계 내에는 크고 작은 여러 지천과 산지, 구릉지, 농경지가 복합적으로 위치해 있는데 이 또한 생태 다양성과 관련 있다. 하지만 미호강의 생태 특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환경인자는 무엇보다도 모래다.

 

'모래의 강'이 품은 미호종개와 흰수마자

다시 강조하건대 미호강은 특별한 모래하천이다. 모래하천의 특성은 미호강을 생명의 강으로 자리 잡게 한 중요한 환경요인이다. 또한 미호강의 생태 다양성과 생태적 특수성도 모래하천이란 환경요인에서 기인한다.

실례로 모래하천의 독특한 생태 특성은 미호종개(Cobitis choii)라는 한국고유종을 탄생시켰다. 미호강의 모래사장에 유난히 관심을 가졌던 한 어류학자의 학문적 호기심이 미호종개라는 신종을 찾아내는 계기가 됐다. 원로 어류학자인 김익수 박사(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이야기다. 김 박사는 대학 동기인 손영목 박사(서원대학교 명예교수)와 공동으로 미호종개를 신종 발표했다.

김익수 박사는 오래전부터 미호강의 모래사장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저렇게 모래가 많이 깔린 하천에는 참종개 외에 특수한 종개류가 살지 않을까. 만일 산다면 그것은 신종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그의 학문적 혜안이 결국 손영목 박사와 함께 미호종개라는 새로운 물고기를 찾아내 한국의 민물고기 1종을 추가 기록하는 업적을 낳았다. 이러한 업적의 단초는 미호강의 모래였다.

모래하천 미호강에는 두 터줏대감 물고기가 살고 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1급인 미호종개(왼쪽)와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인 흰수마자다./김성식
모래하천 미호강에는 두 터줏대감 물고기가 살고 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1급인 미호종개(왼쪽)와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인 흰수마자다./김성식

모래하천 미호강에는 또 흰수마자(Gobiobotia nakdongensis)란 물고기가 살고 있다. 흰수마자는 몸길이 6~10cm 정도인 잉엇과의 작은 물고기다. 미호종개와 함께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절멸 직전의 물고기다.

이 물고기는 사연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일본인 모리가 낙동강에서 처음 5마리를 채집해 낙동엔시스(nakdongensis)란 종소명을 붙여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47년 만인 1982년 처음으로 손영목 박사가 미호강에서 12개체의 흰수마자를 발견함으로써 이 물고기가 낙동강 외의 다른 수계에도 서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이후 서식 개체 수가 급속히 줄어들어 서식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학자들이 미호강에서의 절멸 가능성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2021년 실시한 한 조사에서 흰수마자 3개체가 미호강 중하류에서 발견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손영목 박사가 미호강에서 처음 흰수마자를 발견한 지 39년 만의 일이다.

흰수마자는 서식 조건이 까다로워 깨끗한 물과 가는모래, 얕은 여울이 있어야 살 수 있다. 특히 바닥에 가는모래가 깔린 얕은 여울을 선호한다. 습성이 미호종개와 비슷하다. 미소 서식지 또한 두 물고기가 겹친다. 미호강에서 모래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사라질 물고기들이다. 중요한 것은 전국에 수많은 강과 하천이 있지만 미호종개와 흰수마자가 함께 서식하는 곳은 모래하천인 미호강과 금강의 일부 수역뿐이다.
 

모래하천이 가져온 '황오리의 최대 월동지'

미호강의 대표 겨울철새 황오리들이 먹이를 먹기 위해 강 인근의 농경지를 찾았다. 미호강은 황오리의 휴식터인 모래사장과 먹이터인 농경지를 동시에 갖춘 천혜의 월동지다./김성식
미호강의 대표 겨울철새 황오리들이 먹이를 먹기 위해 강 인근의 농경지를 찾았다. 미호강은 황오리의 휴식터인 모래사장과 먹이터인 농경지를 동시에 갖춘 천혜의 월동지다./김성식

모래하천은 스스로 수많은 생명을 보듬는 생명터이기도 하지만 철 따라 오가는 철새들을 불러들이는 중요한 환경요인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들어 미호강이 황오리(Tadorna ferruginea)의 주요 월동지로서 주목받게 된 근본적인 요인도 결국 미호강이 모래하천이라는 환경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황오리는 한 해 겨울에 약 2천 마리가 찾아오는 흔치 않은 겨울철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찾는 황오리는 대략 두 곳(경기 김포 한강하구와 충북 청주 미호강)에서 절반가량씩 나뉘어 겨울을 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2~3년 전부터는 미호강 쪽으로 더 많이 날아와 국내 최대 월동지로 자리매김하면서 황오리가 미호강의 대표 생물로 급부상했다.

지난 2022년 겨울에는 하루 최대 1200마리까지 확인됐다. 최근 5년 내 가장 많은 숫자다. 우리나라를 찾는 전체 황오리의 약 60%가 미호강을 찾았다는 얘기다.

황오리는 월동지로 물가 옆에 넓은 모래사장이 있고 인근에는 넓은 농경지가 펼쳐진 곳을 선호한다. 모래사장은 휴식터로, 농경지는 먹이터로 이용하기 위해서다. 휴식터와 먹이터는 철새들이 겨울을 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이다.

이들 두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곳은 전국에서 몇 안 된다. 그중 한 곳이 미호강 중류다. 미호강 중류엔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강 주변으로는 청주평야과 진천평야로 이어지는 곡창지대가 위치한다. 이 같은 천혜의 조건은 갈수록 미호강을 찾는 황오리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에서도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미호강 중류의 특징은 물가 바로 옆에 사방이 트인 넓은 모래사장이 연이어 있고 가까운 곳에 농경지가 즐비하다. 휴식터와 먹이터가 미호강을 중심으로 공존한다.

이러한 환경 조건은 비단 황오리만 선호하는 게 아니다.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가창오리, 쇠오리 등 다른 겨울철새들도 선호하고 또 실제로 다수가 찾아오고 있다.

이처럼 미호강은 '남다른 모래하천'이기에 더 없는 생명의 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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