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있어 오늘도 새벽 인력시장에 갑니다
가족이 있어 오늘도 새벽 인력시장에 갑니다
  • 연현철 기자
  • 승인 2018.02.12 2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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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사람들] 4. 새벽인력시장 노동자 이야기
수년을 이곳에서 일한 한 노동자는 "일용직이라는 생각보다는 하나의 직장으로 생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오늘도 변함없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 신동빈

[중부매일 연현철 기자] 11일 오전 5시 50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의 한 인력소개소는 이른 새벽부터 분주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새벽의 고요함을 깨고 벌써부터 일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50~60대 중장년층인 이들 중 한 젊은 청년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부터 공장 신축현장으로 일을 나가고 있는 몽골인 들근(22)씨다. 들근씨는 지난해 4월 한국으로 경영마케팅 공부를 위해 넘어와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때문에 학교 수업이 없는 방학기간 동안 매일 같이 일을 나오고 있다.

더욱이 임신한 아내의 출산예정일에 맞춰 몽골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주말이라도 일을 놓을 수 없다.

들근씨는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4월로 잡혀있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며 "아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옆에 있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내와 곧 태어날 딸이 몽골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깨 통증도 사라진다"고 전했다.

그는 현장에 출근시간까지 휴대전화를 꺼내 가족들의 사진을 들여다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배가 불러온 아내의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아내의 자랑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국말이 다소 서툴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보수는 그리 넉넉지 않지만 땀으로 얻은 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늘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들근씨는 "사실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하는 건 힘든 일이 아니다"라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보고싶고 그리운 마음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졸업까지 남은기간이 3년이라 아내 출산 이후 학업과 일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한파를 마주하며 겨울을 보낸 한 노동자가 두 손을 난로 곁에 모으고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신동빈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인력사무소로 들어온 김영남(48)씨도 이 인력소개소의 단골이다. 중국 연변에서 나고 자란 김 씨는 2016년 8월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리웠던 한국땅이었지만 걱정도 많았다. 당장 무슨 일을 찾아서 먹고 살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어떤 일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이제는 가족을 부양하는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명절에 김 씨는 더 힘을 내고 있다.

김영남 씨는 "설 명절에 차례는 지내지 않지만 열심히 일해서 맛있는 음식이라도 나눠 먹으며 가족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가족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보다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TV앞 난로 주변에 앉아 온기를 쬐는 공성만(66)씨도 사무소 문이 열리자마자 일찍 출근 도장을 찍기로 유명하다. 전날의 모래먼지가 그대로 묻어있는 작업복 차림의 공 씨는 얼마전부터 착공한 공사장에 일을 나갔다가 관계자로부터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 매일 같은 곳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한파를 마주하며 겨울을 보낸 한 노동자가 두 손을 난로 곁에 모으고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신동빈

나이가 들수록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도 있지만 식솔들을 생각하면 아직 일을 멈출 수 없다. 이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인력사무소에서의 짤막한 대화가 요즘은 그의 삶의 원동력이되고 있다. 이날도 그는 사무소를 둘러보며 보이지 않는 동료를 걱정했다.

공 씨는 "인력사무소에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가족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일을 안나오면 전화를 하기도 한다"면서 "각자 다른 곳으로 일을 나가지만 늘 보이던 얼굴이 없으면 그만큼 걱정되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도 전날의 피로로 인해 몸이 무거울 때가 많지만 흔들림 없이 새벽을 열고 있다.

공 씨는 "요즘은 손주들의 애교를 보면 피로가 절로 풀려 용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라며 "일을 쉬고 집에 있으면 몸이 더 아픈 것 같아 일을 나오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 전했다.

고된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누구보다 끈끈한 정을 나누며 서로를 의지한다./신동빈

오전 7시가 되자 난로를 둘러싸고 몸을 녹이던 이들이 작업 현장으로 나가기 위해 차례로 자리를 떠났다.

쌀쌀해진 날씨에 겨울 작업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이들은 일을 쉴 수 없었다. 누군가는 아내를 위해 또 손주를 위해, 가족을 위해 한쪽 어깨에 작업 도구가 담긴 무거운 가방을 다른쪽 어깨에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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