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 천직"...경찰·집배원 거쳐 다시 소방으로
"소방관이 천직"...경찰·집배원 거쳐 다시 소방으로
  • 연현철 기자
  • 승인 2018.04.16 1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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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사람들] 13. 청주서부소방서 김기원 대응구조구급과장
30년 소방관 생활 퇴임을 앞 둔 김기원 청주 서부소방서 대응구조구급과장은 "후배들이 현장에서 다치지 않고 명예로운 소방관이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신동빈

[중부매일 연현철 기자] "누군가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스스로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구조를 하다보면 기쁨도 정말 많습니다."
 
12일 오전 7시 청주서부소방서 소속 김기원(59) 대응구조구급과장이 관내에서 발생한 상황을 종합해 살피고 있다.

이후 정리된 내용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개인 장비 점검 및 차량 운영에 대한 내용을 지시한다. 김 과장은 지난 1989년 2월 11일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김기원 과장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충북 소방의 전설'로 불린다. 지난 1993년 1월 7일 발생한 우암상가 붕괴사건 등 충북의 큰 사고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30년의 경력으로 무장한 김 과장은 화재와 구조를 넘나들며 소방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장 출동이 잦지는 않지만 대형 화재가 발생시 여전히 방화복을 착용하고 현장에 나선다.
 
특히 그는 소방 뿐만 아니라 경찰관과 우체국 집배원을 경험한 이력으로도 동료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김 과장은 지난 1983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근무를 하던 중 아버지의 권유에 못이겨 소방관을 그만두고 경찰관으로 3년, 우체국 집배원으로 1년을 일한 바 있다. 두가지 일 모두 보람찼지만 소방관으로 일했던 지난날의 의미와는 달랐다.

결국 그는 다시 소방관의 길을 걷고자 마음 먹고 재임용에 나서 다시 진압복을 입을 수 있었다.
 
"재난 현장은 100번이면 100번 모두 다릅니다. 결국 매뉴얼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현장을 다녀온 뒤가 더 중요해요.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했으면 국민을 더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었을까. 끝없이 고민하고 돌아봐야 합니다."
 

김기원 청주 서부소방서 대응구조구급과장 주재로 근무자 교대를 하고 있다./신동빈

김 과장은 제천 화재 참사 이후 소방의 매뉴얼이 많이 바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된 매뉴얼이라 할지라도 소방관 스스로가 이를 응용하고 적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여러 고민 끝에 그가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백지전술'이다.

관내 관할구역에서 소방차가 현장까지 가장 빠른 길을 백지에 그려내는 훈련이다. 이는 소방관이 담당 지역의 지리와 환경을 모두 머릿속에 넣어 두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는 소방관이라면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암상가 붕괴현장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건물이 무너져 하마터면 저와 동료들이 깔릴 뻔한 적도 있었죠. 저는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현장을 지켜야 했고 가족들은 그런 제가 걱정돼 현장 주변에서 지켜봤다고 하더라고요."
 

서부소방서 대원들이 개인 장비를 점검하고 출동준비를 하고 있다./신동빈

김 과장과 현재 충주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안원태 지휘팀장은 당시 우암상가 현장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파트너였다. 이들은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가 동시에 이뤄졌던 당시를 떠올렸다.

화재로 인해 건축 자재가 약해지면서 결국 붕괴까지 이어졌던 순간, 이들은 요구조자 1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상가로 진입했다.

수색작업을 벌이던 중 한 고등학생이 건축자재에 발이 껴 현장에서 하체를 절단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과 마주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인 학생의 다리를 쉽게 자를 수는 없었다. 결국 이들은 붕괴의 우려로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연장만으로 돌을 깨 2시간 여 만에 무사히 구조했다. 김 과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 학생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대학까지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소방관이 마주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막중했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인명 피해가 발생하거나 구조 방식에 사람들의 오해를 받는 일도 다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방관이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었다.

소방관도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라지만 재난 현장에서 만큼은 '구조하는 사람'이라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소방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어요. 그러다보니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후배들은 없길 바라는 마음이 크죠."
 
김 과장은 소방 공무원 초임시절에는 소방 업무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열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만을 탓하며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는 근무가 없는 날이면 구조와 화재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엘리베이터 회사를 찾아가 구조 업무를 터득하고 등산학교에서는 산악 구조 및 화재 대응을 익혔다. 그렇게 신임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내공은 현장은 물론이고 후배들에게 전달됐다.

특히 지난 4년간 중앙소방학교에서 구조 관련 지도를 맡으면서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김 과장은 소방관이라고 해서 위험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현장에 나서고 기술만 있다면 위험성이 더 줄어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소방관으로서의 소명의식 보다는 천직이라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퇴직을 앞두고 있지만 소방복을 입고 있는 동안은 변함없이 국민을 구조하는 데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그렇게 일한지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남은 시간을 쓰고 싶어요. 부디 현장에서 다치지 않고 소방관으로서 한 없이 명예로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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