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출신으로 대한민국 공군 창군 결정적 기여

공군이 19일 공군사관학교에서 개최한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식에서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공군사관학교 제공
공군이 19일 공군사관학교에서 개최한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식에서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공군사관학교 제공

[중부매일 박성진 기자] '공군 창군의 주역' 최용덕 장군(1898~1969)의 동상 제막식이 19일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렸다.

원인철 공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린 이날 제막식에는 6·25전쟁 출격 조종사, 역대 공군참모총장, 최용덕 장군 유가족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공사 경과보고, 최용덕 장군 공적 소개, 제막, 공군참모총장 축사, 최용덕 장군 유가족 회고사, 공군가 제창 순으로 진행된다.

최용덕 장군 동상은 높이 3.2m로 손을 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동상 좌대와 뒷편 부속조형물에는 최용덕 장군의 일대기가 서술됐다. 동상은 공군사관학교와 교육사령부에 설치해 미래 공군의 주역이 될 교육생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할 예정이다.

최용덕 장군은 189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9년 대한독립청년단,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펼쳤고, 1924년 보정항공학교에 입교해 조종사가 됐다. 1927년 국민혁명군 항공대에 합류한 이후 중화민국 공군의 고급장교로서 중화민국 공군 건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40년 광복군 창설 후에는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 등을 거쳐 1944년 참모처장을 역임했다. 특히 1943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군설계위원회 조직을 주도해 공군 창군의 기원을 이뤘다.

광복 후 1946년에는 공군을 창군하기 위해 국내 항공단체들을 통합해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했다.

1948년 4월 50세의 나이에 항공부대 창설을 위해 미군정이 제시한 요구 조건에 따라 백의종군해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서 기본군사훈련을 받고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해 소위로 임관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최용덕 장군은 초대 국방부 차관에 임명됐다. 국방부 차관으로 재직 때는 국군조직법 제정에 관여해 공군 독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49년 10월 1일 마침내 최용덕 장군의 일생 숙원이었던 대한민국 공군 창군이 이뤄졌다.

이후 1950년 공군에 복귀해 6·25전쟁에 참전했고, 1952년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후 1956년 중장으로 전역했다.

1960년 체신부 장관, 1961년 주 중화민국 대사에 임명됐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최용덕 장군은 "내가 죽거든 수의 대신 공군복을 입혀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1969년 8월 15일 7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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