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텃밭 베란다에 채소 키우는 시민 늘어 '북새통'
모종 사고 파는 이들 얼굴에는 하나같이 환한 웃음꽃
정성 들여 직접 키운 신선한 채소 밥상에 올리는 기쁨
심고 수확하는 과정 SNS에 업로드하는 유행도 번져

봄비가 한차례 내리면서 산과 들이 촉촉해졌다. 바야흐로 봄이다. 습기를 머금은 흙 속에서 수많은 생명의 숨소리가 오가는 계절이다. 밭갈이하는 농기계 소리로 농촌 들녘이 활기차다. 꼭 전업농이 아니더라도 농부인 양 텃밭이나 베란다에 이런저런 채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맘때 그들이 즐겨 찾는 곳은 다름 아닌 모종시장이다. 어디라 할 것 없이 오일장은 물론 상설시장에서도 모종 파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 청주시내에서 쉽게 갈 수 있는 육거리 근처 모종시장을 둘러봤다.

한 가게 앞에 여래 개의 모종 상자가 진열되어 있다. 인도 가장자리에 또 그만큼의 모종들이 놓여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포릇포릇한 모종 상자 쪽으로 다가간다. "어머나, 무슨 상추가 이렇게 여러 가지야?"다소 호들갑스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봄바람처럼 통통 튄다. "골라보세요."주인도 약간 톤을 높이며 봄바람을 부추긴다. 상추를 보던 여자의 눈이 이내 다른 곳을 향한다. 주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구경에 빠졌다.

산마늘, 명이나물, 방풍나물, 곰취, 큰 토마토, 방울토마토, 당근, 완두콩, 눈개승마, 양배추, 파프리카, 콜라비, 브로콜리, 비트, 샐러리, 신선초, 두메부추 등 각종 채소 모종이 가득하다. 그 옆에는 수국, 무스카리, 만데빌라, 튤립, 비텐스, 카랑쿠에, 꽃기린, 아스터, 달리아 등 다양한 꽃모종이 모여있다. 애플민트, 초코민트, 스피아민트, 페파민트 등 민트 종류만 해도 네 가지나 된다.

호기심이 발동한 여자가 주인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이거 밭에 심어요? 아니면 화분에 심어도 되나요?""이거 꽃은 언제 피나요?""이 꽃은 내년에도 살아서 피나요?""눈개승마는 어떻게 해서 먹는 거예요?"오만가지 다 물어보는 손님의 말에 주인은 척척박사처럼 힘도 안 들이고 술술 대답한다. 그러는 동안에 손님이 하나둘 모이면서 갑자기 여남은 명이 동시에 주인을 찾는다. 여자는 주인을 놓치고 구경을 이어간다. 함께 온 남자는 벌써 대여섯 가지 모종을 골라 상자에 담아놓고 있다. 말보다 행동이 빠르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샀어요? 심을 땅도 별로 없는데…."여자가 지청구 아닌 지청구를 한다. "땅 모자라면 화분에 심으면 돼."이 사람도 대답에 힘을 들이지 않는다.

손님들이 사는 모종은 각양각색이다. 그중 상추가 제일 잘 나간다. 남자도 상추모종을 세 가지나 박스에 담았다. 쌈채소의 대표 격인 상추는 잎상추가 제일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잎에 쭈글쭈글 주름이 있는 축면상추와 치마처럼 잎이 넓적한 치마상추가 있다. 색깔에 따라 적축면, 청축면, 청치마, 적치마, 흑치마로 구분한다.

상추는 4월부터 11월까지 재배할 수 있어 수시로 심을 수 있는 채소다. 오장을 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강화하는 데 좋다고 하며 입 냄새를 없애고 말린 상춧잎은 치아를 하얗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상추 줄기에서 나오는 하얀 즙은 수면 성분이 들어있어서 학창 시절엔 상추를 많이 먹지 말라는 소리도 들었다.

손님 있는 곳에 손님이 더 몰린다고, 길 반쪽을 사람들이 차지했다. 진열된 모종을 잠깐씩 구경하기도 하고 사지도 않으면서 여러 가지 물어보기만 하는 손님도 있다. 주인이 혼자서 쩔쩔매는가 싶을 때쯤 가게 안에서 젊은이가 나온다. 작은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주인보다 더 상냥하고 재빠르게 손님들을 상대한다. 아들인가 싶다. 잠시 후엔 수더분한 주인댁이 출동한다.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소외되는 손님이 없도록 두루 살핀다. 계산도 빠르게 처리한다. 잘 맞춰진 톱니바퀴처럼, 분주하지만 산만하지 않은 거래현장이다.

요즘에 관심받는 모종은 눈개승마라고 한다. 천연항생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뿌리와 잎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전통 한방에서 오랜 세월 약용으로 활용됐는데 최근에 직접 재배해서 나물로 많이 먹는 추세다. 어린잎이 삼잎을 닮았다고 해서 삼나물로 불리는데 인삼, 두릅, 소고기의 세 가지 맛을 낸다고도 한다. 눈개승마에는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하니 나른한 봄날에 딱 맞는 채소라고 볼 수 있다.

모종 가게는 1년 중에 봄철이 가장 바쁘다고 한다. 너도나도 텃밭이나 베란다에서 채소를 길러 먹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모종 사는 일이다. 예전에는 은퇴한 남자들의 로망이 캠핑카 사는 거라고 들었는데, 요즘엔 주말농장에서 텃밭 가꾸기라는 말도 있다.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놓고 라이브방송처럼 수시로 자신의 SNS에 올리며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 좋아진다.

"상추를 좀 많이 사셨네요?"여러 가지 상추모종을 산 남자에게 물었다. "아내가 상추를 좋아해요. 잘 키워서 아침마다 한 소쿠리씩 따다 주면 엄청나게 좋아합니다."고연히 싱글벙글한다.

한바탕 손님들이 북새통을 이루다 잠시 조용해졌다. 다시 몰려든 손님들이 질문을 쏟아낸다. 주인은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며 모종을 판다. 손님은 마치 선물 받은 듯 표정이 환해진다. 얼른 가서 흙에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성을 들이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텃밭에서도, 베란다에서도, 풍성한 봄을 이룰 것 같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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